2021.08.01-인턴 한 달 후 최종 탈락 한 날의 일기
가스레인지를 켜 물 온도를 80도로 맞춘다.
의류용 염료를 집어넣고 은근하게 끓여준다. 탕이 완성되면 안 입는 옷가지를 집어넣어 염색을 한다.
옷이 ‘쓸모 있는 것’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팬데믹 사태로 우리는 새로운 신세계를 맞이하였고, 출렁이는 경제 덕에 내일이 보이지 않는 하루를 버텨내는 중이다.
이 시기에 나와 내 친구들은 ‘쓸모’를 의심하고 있다.
제 가각 다른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겨우 발 딛고 있는 이십 대 중반의 우리
어엿한 사회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닦달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항변한다.
누군가 우리의 처지를 내밀히 들여다본다면 이렇게 냉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화자 양동 친구들의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소속감도 없이, 임금도 없이 사회에 부유하는 척척 학사들
우리는 화상 회의 프로그램에서 만나 각자 쓸모에 대해 논한다.
인간의 쓸모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논하는 이 과도기에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노동으로
정리하기엔 너무 야비한 것 같다.
노동인구를 제외한 이들은 쓸모없는 인간인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내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구석’ 그리고 임금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완벽한 전체의 일부가 되느니 불완전한 나로 살고 싶다.’
우리는 이 팬데믹 사태 속에 점이 아닌 선이 되고 싶다.
재난 속 우린 섬으로 살기에 너무 여린 존재들이다.
그러기에 쓸모 있는 하나로 세상에 정을 붙이고 서울에서 버틸 수 있기를,
잉여 자원인 나도 어딘가에서 쓸모 있는 자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