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6의 새벽산책

라라랜드와 오열

by 평양이디엠


오늘은 많이 힘들어서 집에 있다가 지희네로 또 출근했다.

그 전날도 공연 끝나고 지희랑, 예림이, 윤선이와 힘겨운 시간을 버텼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이어리에 적어 놓은 ‘자기 비하 금지, 자기 연민 금지,

나를 살리는 사람은 오직 나뿐’ 이 문구를 지키는 게 너무 어려웠다.

밥도 챙겨 먹고, 달리기도 삼십분 했지만 정말 이러다 제 명에 못 살 것같았다.

엄마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한 시간 간격으로 전화하고, 친구네 집 가서 있으라고 했다.

어제 지희가 준 옷을 입고, 오래간만에 좋아하는 신발도 신고, 화장도 좀 하고 지희네 집으로 향했다.


“지희야 나 키워줘라 진짜. 잘할게 나 입양해 줘”

평소 같았으면 “남자 아니면 안 들여~” 하는 지희인데

내가 많이 지쳐 보였는지 “그랭 그럼 제리가 언니야~”한다.

바로 지희네 강아지 제리한테 언니라고 불렀다.

얼마 전 중성화를 한 제리.

“지희야 나도 중성화해야 되니?”

물었더니 해야 한단다.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고,

밥을 시켜 먹었다. 요즘 밥 먹는게 너무 귀찮아서 잘 안 챙겨 먹었더니

몸무게가 45kg까지 빠져버렸다, 맙소사 그래서인지 기운도 없고 의지도 없다.

내일부터는 사람답게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오늘은 지희네 집에서 일찍 나서기로 헀다. 그 전날 세시 반에 집에 오니 영 피곤했다.

10시에 침대에서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또 마음이 아리송한 게

집에 혼자 있으면 생각에 잠식당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동네 친구를 만났다.

친구네서 맥주를 마셨다. 귀엽게도 내일 수업 과제를 해놓고, 아이디어 스케치 한걸 보여줬다. 넷플릭스에 들어가 ‘라라랜드’를 틀었다.


‘라라랜드’는 영화광인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고 치켜세우는 영화인데

모든 것이 완벽하다. 미장센, 음악, 메시지…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을 때의 나

나는 인생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가장 행복한 때 이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두 번 다 엉엉 울면서 봤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시험을 준비하고 막막한데 우리 엄마가 위암 진단을 받았을 때다.

시험을 보고 내 가장 친한 친구인 지원이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내 앞날은 너무 막막하고, 시험에서 떨어지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보이지 않았으며,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처럼 꿈을 좇기에는 지고 있는 짐이 많은 것 같았다.

21살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다. 그리고 와중에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으니 시험이고 뭐고 장녀인 나는 눈물을 감추고 엄마랑 병원에 다녔다.

다섯 살 차이 나는 동생은 지금까지도 호칭이 ‘아기’인데 우리 아기가 뭘 알았을까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것도 내가 조심스럽게 말해줬고, 지방에서 일하던 아빠도 충격을 받고 얼른 집으로 왔다. 엄마가 죽으면 난 진짜 못 살 것 같은데 이 시험에 떨어지면 엄마가 살아도 나는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학원은 안 나갔지만 시험은 보러 다녔다.

그리고 그때 내 가장 소중한 친구 지원이랑 라라랜드를 봤다.


세상에서 가장 염세적이고, 비관적이었던 나는 첫 장면부터 엉엉 울었고,

“저기 있는 사람 중에 몇 명이 성공하겠냐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난 그게 너무 슬퍼” 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라라랜드의 결말은 모두 알다시피

주인공들이 각자의 길에서 대성한다. 둘의 관계는 꿈을 좇던 열정적인 시기에 ‘함께했던 사람’, 시절 인연이지만 둘 다 꿈을 이뤘다는 데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고 손뼉을 쳤다. 그 시기에 나는 꿈을 이루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었기에 아주 꽉 막힌 해피엔딩이라 찬양했다. 그때 당시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매우 슬퍼했던 걸로 기억한다.


두 번째로 라라랜드를 본 건 스페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였다.

당시의 나는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꿀맛 나는 시기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23살의 나는 21살에 원하던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그로 인해 많이 바뀌었다.

조금 유순해졌고, 둥글어졌다. 아마 지원이가 사포처럼 날 다듬어서 세상에 내보낸 것 같다. 그리고서 만난 내 소중한 친구 희선이 둥글어진 조약돌 같은 나를 희선이는 잘 구워줬고, 뜨거운 짱돌로 거듭났다.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디 있나 싶었고, 항상 뜨겁고, 항상 즐거웠다.

그 와중에 간 스페인 여행은 정말 짜릿했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물놀이 후 그늘에서 느끼는 추위만큼 시렸다. 이 시점에 본 라라랜드는 또 달랐다. 역시나 첫 장면은 가슴이 벅차올랐고,

수많은 이들 중 꿈을 이루는 사람들은 소수라는 게 허탈했다.

그리고 미아가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똑같은 옷을 입은 지원자들이 빽빽한걸 보고 숨까지 막혔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완벽하게 해피엔딩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나의 꿈, 나의 인생이 우선인데 스쳐 지나가는 사랑이 뭐 어쩌라고’


였다. 그리고 지난번과 다른 포인트에서 엉엉 울었다. 그 둘의 좋은 시간들이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펼쳐질 때 오열했다. 왜 울었냐면 그 해 여름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자유롭고 뜨거웠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앞으로의 여생에서 이것보다 행복할 순 없겠다.’를 느꼈다.

인생의 그래프가 있다면 지금 정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겠구나 싶어서 엉엉 울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복학을 하고 졸업전시 준비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겠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는 못 살 테니까. 저 둘처럼 꿈만 보고 살 자신은 없으니까 23살짜리가 남은 인생의 재미를 걱정하며 엉엉 울었다.


그리고 오늘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왜 이렇게 얄궂은지

함께 미래를 약속했던 사람과, 행복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게 어찌나 슬펐다.

영원한 건 왜 없을까

지금까지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이 생각났다. 물론 오늘 영화를 같이 본 친구도 그럴 것이다. 요 근래 가장 많이 만나는 친구긴 하지만 끝이 정해진 친구라고 생각한다.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를 세 번 보면서 볼 때마다 오열하는 포인트가 달라지니 살면서 또 얼마나 슬프게 여기는 게 달라지고, 바뀔까 나는 바뀌는 게 참 싫은데.

그냥 지금 이대로 이 마음을 유지하며 살고 싶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내가 너무 좋아서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아직도 애틋하다.

그리고 빗소리가 좋아서 산책을 했다.

새벽이 되었고, 길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The Blower's Daughter - Damien Rice (Closer ost)

Wild World - Mr. Big

Love Is A Laserquest - Arctic Monkeys

Last Night On Earth - Green Day

너와 나 우리 (You N Me Us) - 웨터 (wetter)

를 들으며 걸었고, 그리고 짐을 챙겨 집에 갔다.

내 작은 방은 나를 품어주는데 요즘 나는 그냥 밖으로만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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