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평양이디엠


“내게 돈은 중요하지 않아.”

“그러면 뭐가 중요하지”

“사랑"

“사랑이라고?”

“사랑은 전투야. 나는 오랫동안 싸울 거야 끝까지”

“사랑이 전투라고? 나에겐 싸울 마음이라곤 털끝 만치도 없어”


라며 프란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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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줄 모르는 여자에게 있어 뜀박질 도중에 영원히 멈추는 것은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골조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문장들을 곱씹어보면 하나하나 뜯을 거리가 많다.

질겅질겅 씹으면 계속 짠내 나는 오징어 다리처럼.

위 구절이 정말 와 닿았던 이유는

요 근래 느꼈던 감정과 은근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본래 성취욕이 근본인 사람이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재미를 느끼던 사람이다. 태초에 인류의 영원한 테마는 ‘재미’라고 생각하며

이를 쫓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헤쳐나가는 자발적 퀘스트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 굴레가 싫증이 나고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왜 갖지 못한 것을 탐내며, 탐하는 것을 소유하거나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고, 끝끝내 성취해낸 뒤 그 명예로움은 잊고 또 다른 것을 탐내며

다시 노력하는 이 굴레를 왜! 어째서 계속 굴려야 하지.

우리 사는 게 ‘시시포스의 바위’ 얘기 속

영원한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 아닌가.

지긋지긋한 이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없으며

행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가련한 존재.


인류의 영원한 테마인 ‘재미’를 찾는데 고통이 수반된다면 그것을 잠정적으로

쉬기로 했다. 재미를 쫓는 시시포스는 역설적이라 그만두기로 했다.

멈출 줄 모르는 여자는 뭐 어쩌겠는가? 한번 멈춰도 봐야지.

그래서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재미 좀 보려고.

동물, 사람, 책 형태가 있는 모든 것에 마음을 주고 있다.

마음이라기보다는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벅찰 만큼 무한한 애정을 주고 있다.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 만큼 분명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형태가 있는 것도 영원하지 않다. 마모되고 잃어버리기도 한다.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소중한 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버리자!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칫솔이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형태가 남아도 마음은 영원하지 않다. 어려워 진짜

소설에서 한 여자는 ‘사랑’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전투이며 오랫동안 끝까지 싸워서 쟁취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 전투에 참여할 용의가 없다고 고한 뒤 여자를 떠난다.

이 구절을 읽을 때 어떤 상황이 그려졌느냐면

완벽하게 차려입고, 기대하며 고대하던 약속장소에 나갔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사흘 동안 씻지 않고,

가장 편한 옷을 입은 채 편의점 앞에서

맥주나 마시자고 권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단단히 마음먹고 나왔는데.

머리도 감고, 불편한 신발도 신었는데……


서로의 무게가 다른 것만큼 상대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끝나지 않을 치열한 전투에 대비하여 단단한 갑옷과 날을 벼린 무기로

중무장한 여자가 마주한 싸울 용의가 없는 남자만큼

그 여자를 비참하게 만든 것을 없었을 것이다.

감정을 느끼는 모든 형태는 각각의 관계에서 다른 무게를 가진다.

그것은 시소 같다. 그러나 완벽하게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없는 시소.


싸울 용의가 없던 사람과 끈질긴 인연을 맺고 싶어 했다.

정을 주지 않는 고양이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줘버렸다.

나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고양이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써 버렸다.

우리 집에서 임시 보호하고 있는 정구땡

‘임시’라는 딱지를 붙여 놓고 너무 걱정을 쏟아 부었다.


정말 도대체 어디에서 재미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성취는 시시포스의 굴레, 형벌처럼 느껴지고,

형태가 있는 것이 불어넣는 사랑 또한 변질하였다.

그리고 변질하는 것도 영원한 순환이 되어버렸다.


지상에 영원한 건 없고, 반복되는 굴레만 있으니

영생도, 사후세계도, 천국도 지옥도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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