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이태원 맥도날드 일시: 2021.11.19~20
<첫차를 기다리며>
장소: 이태원 맥도날드
일시: 2021.11.19~20
첫차를 기다리게 된 경위:
이태원역코인락커에 옷과 노트북 든 가방을 두고 나왔다.
새벽 세시, 집에 가려고 짐을 찾으러 가니 이태원역 입구에 셔터가 내려가 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더라. 이태원역 코인락커에 겉옷을 빼앗긴 사람과,
노트북을 빼앗긴 사람은 산책하다가 이태원 맥도날드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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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초입, 겉옷을 빼앗긴 사람인 나는 홀터넥 민소매만 입은 채로 첫차를 맞이하게 되었다.
일 년 전 비슷한 경위로 여기 이태원 맥도날드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재밌는 광경(노숙자와 외국인이 싸우며, 그 소리에 놀라 트레이를 놓친 남자 덕에
감자튀김이 비처럼 내렸다. 감자튀김 비 창조자의 팬티 속에는 지갑이 있었다.
바지 속에서 삐죽 튀어나온 지갑 귀퉁이가 말해주고 있었다. )을 보았기에
이번에도 첫차를 기다릴 장소로 이곳을 정했다.
사실 싼 값에 눈치 안 보고 엉덩이 뭉개고 있을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자두칠러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 주제는 여러 번 바뀌었다. 이태원으로 넘어오기 전에
내 오랜 친구와 그 친구의 동기들 이렇게 술을 마셨는데
그들은 모두 4차 산업에 종사하는 짱 멋진 메타버스 디자이너,
UX.UI 디자이너 등등 가상세계 사람이라 우린 일론 머스크, 도지 코인,
시뮬레이션론 등을 욕했다.
역시 가상세계와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디지털 세상은
우리랑 맞지 않음을 토로하고, 전래동화 얘기를 했다.
요즘 빠져있는 소설. 도깨비가 등장하니 전래동화라고 말해둔다.
정말 깊이 빠져서 거진 나흘 동안 집 밖에 안 나가고 이 소설 세계관에 빠져있었다.
노트북을 잃은 친구가 제발 현실 세계로 빠져나오라고 간청을 하지만
이 소설 세계관을 정리하느라 새벽을 꼬박 새버렸다.
그리고 그 페이지는 장장 10장에 달했다. 채00 작가님. 이분이 저에겐 톨킨이고 롤링입니다.
아무튼, 의미 없는 주제에 열변을 토하고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나온 최고의 논쟁거리
“치킨버거를 햄버거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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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사반대파. ‘노트북 읽은 이’는 완전 찬성파
이 논쟁거리가 나온 이유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맥도날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를 얘기하던 중 ‘노트북 잃은 이’가
“아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햄버거는 무조건 치킨버거만 먹었는데
그럼 치킨도 먹고, 햄버거도 먹는 기분이잖아.
햄버거도 먹고 치킨도 먹는 거지 우하하”
라고 말한 데에서 기인하였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햄버거의 핵심은 소고기 패티인데
어떻게 소고기 패티 없는 햄버거를 햄버거라고 부를 수 있지?
그냥 치킨이 들어간 ‘치킨’ 버거일 뿐이잖아.
그러니까 둘 다 들어간 게 아닌 치킨이 들어간 ‘버거’지 낫 ‘햄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했다. 치킨버거는 햄버거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치킨버거니까. 치킨버거는 그 이름이 따로 있는데 어찌 햄버거라는 이름을 넘보는 걸까.
이름은 본질이자, 기원이다. 이름을 지어준 순간부터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그게 그거지 하며 넘어가 버리면 정다인이나 장다인이나 거기서 거지지 라며 넘기는 거와 같다.
그러니까 햄버거를 존중해주자고.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요즘 빠져있는 소설 때문이다.
도리천에 살던 신은 복숭아나무에서 탄생하였다.
사람의 태를 빌어 나지 않았으니 부모도 없고,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이치를 다 꿰고 있었다.
그가 우물을 통해 본 인간들은 맨몸으로 태어났다.
‘부모가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수없이 불러주어
자신의 이름을 깨우치니 자아가 형성됐다.’고 한다.
누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심지어 나는 이름과 상성이 맞지 않다고 하여 개명까지 했으니 이 말에 깊게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붙인 이와 불러서 길러낸 이를 기리며 똑바로 불러주어야 한다.
왜 개명한 이에게 개명 전 이름을 부르면 들어올 복도 나간다고 하지 않는가.
쓸데없는 이야기에 너무 깊게 빠졌다.
사실 치킨버거 안 좋아해서 1차 경악하고,
요즘 읽고 있는 소설의 저 부분에 꽂혀서 과몰입하다 보니 나누게 된 대화다.
첫차는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강제로 지새우는 새벽 네 시쯤은 쓸데없는 얘기에도 석유를 들이부은 듯 깊은 논쟁으로 빠지고,
전래동화 얘기에 감격해서 눈물을 찔끔 보인다.
치킨버거는 햄버거인가 논쟁의 결론은 사실 기억 나지 않는다.
워낙 술을 많이 마셔서 술 먹고 한 또 하나의 진지한 헛소리다.
우리는 새벽 다섯 시경 이태원역으로 가 셔터가 올라가는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 바라봤다.
옷과 노트북을 챙겨 라면에 김밥을 먹었다.
우리 다시는 머리를 쓰지 말고 요령을 피우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첫차 타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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