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시선, 사랑.
어제 남편과 거리를 걸었다.
그 사람은 신이 나 있었다.
"정아야, 여기가 우리가 앞으로 살 동네야 어때?"
남편만큼 나도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내 온 정신이 불어난 몸에 집중이 되어있었다.
"응응!! 너무 좋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내 몸만큼 무거웠다. 대답을 하고, 내 시선은
바로 내 배 위로 떨어져 있었다.
입고 있는 티셔츠를 괜히 양쪽으로 느려트린다.
살이 삐져나온 건 아닐까..
팔뚝이 울렁거린다.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이
누가 봐도 '살찐 사람'처럼 보일까 봐
나는 자꾸만 옷매무새를 고쳤다.
나도 알고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대해서 그렇게 많이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게
거의 다라는 것을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눈에 띈다.
점점 나의 고개는 바닥을 향하고, 나의 자존감은
서서히 사라진다.
남편은 여기 근처에 마트가 있다고 했다면서 같이 찾아보자고 한다.
"네가 제일 많이 가는 곳이 마트잖아~ 그래서 마트가 가까운 곳으로
내가 아파트를 골랐거든, 이 근처라고 했으니까 한번 걸어가 보자!"
남편의 말투는 원래 다정했지만, 그날따라 그 다정함이
나에게 미안함과 부담스러움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나에게 늘 말한다. '나는 네가 살이 엄~청 많이 찌고,
불어나서 걷지 못하게 되면 너를 휠체어를 태우고 그렇게
다닐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언제나 니 옆에 내가 있잖아.'
그러면서 나에게 살쪘네~ 살쪘네~ 하면서 놀린다.
이상하게 남편의 살쪘네~ 소리는 왜 기분이
나쁘지 않고, 사랑해~ 사랑해~라고 들리는 것일까?
분명히 같은 언어인데, 남편의 '살쪘네'
소리는 너무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마트에 도착했다. 정말 남편의 말대로 우리 집에서
약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적당히 큰 마트가 있었다.
심지어 배달도 되는 마트였다.
"먹고 싶은 거 골라~ 그냥 나가기에는 왠지 눈치 보이니까."
나는 언제 내가 살이 쪘다는 죄책감에 빠졌던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과자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또 또.. 눈 커지는 거 봐라." 남편은 약간 놀리듯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민망하듯 웃었고, 내 시선은 계속 과자를
향했다. 최근에 맛있게 먹었던 과자가 눈에 보여서
얼른 집어 들었다.
남편은 '벌집 피자' 나는 '야채 타임' 다 고르고 마트를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뭐가 있는지, 정육점은
있는지, 유제품 코너에도 가보고, 채소나 과일은 싱싱한지,
오빠가 유제품 코너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 이 정도면 종류도 많고 꽤 괜찮은데?"
그리고 주변을 눈으로 스캔하며, "우리 지금 사는 동네보다는
여기 마트가 종류도 많고 퀄리티도 좋다. 그렇지?"
"응!"
그리고 내 옆에 유제품을 유심히 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괜히 나는 눈치가 보인다.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한다.
'너 살 신경 안 써, 저 남자가 너의 살을 왜 보냐 쓸데없이.'
'뚱뚱하다.. 으으~'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계산대로 갔고, 물건에 바코드가 찍혔고, 나는 카드를 꺼냈다.
영수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바로 버렸다. 오로지 과자를 빨리 뜯어서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안 뜯어지자 남편에게 뜯어달라고
부탁했고, 남편은 한 번에
퍽- 하고 뜯었다. 나는 과자를 옆으로 뜯는 것보다 위로
벌려서 뜯는 걸 좋아한다.
왠지 깔끔해 보이고, 옆으로 뜯으면 뜯은 봉지 조각이
날아다니는 게 퍽 거슬려서 싫다.
남편은 과자를 먹고 싶어서 샀다기보다, 마트에서
그냥 나오기 민망해서 샀을 뿐이다.
그 자체가 나는 부러웠다.
음식을 저렇게 그냥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저 남편의
태도가 나는 항상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과자를 집고, 아무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오기는 할까.
과자를 한 번에 3개 집어 들고 내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나의 모순과 겹쳤다.
'아까 오빠랑 마트 가기 전에 차 안에서도 아이스크림 먹었는데..
과자도 먹고, 살찌겠지... 아 근데 맛있다.. 아냐, 오빠랑
외식 안 할 때는 집에서는 이렇게 까지 안 먹으니까, 괜찮아..'
남편과 있는 건지, '살' 이랑 있는 건지, 이제는 분간이
안된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걸음은 느려지고 있다.
남편은 아까부터 계속 나보다 앞에 서서 걸어간다.
"빨리 와~! 니 과자가 더 맛있단 말이야!"
아무렇지 않은 남편이 그저 부럽고, 좋아 보인다.
걷는 내내 나는 내 몸에 갇혀 있었고,
거울도 없는데, 거울처럼 행동했다.
사람들의 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온통 타인의 시선에 쫓기고 있었다.
"오빠 오늘따라 기가 빨린다. 사람들이 많네."
사람들이 많아서 기가 빨리는 게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
많은 사람들을 집어넣고, '살'이라는 주제로 논쟁을
했기 때문이다.
기가 빨린 게 아니라, 기에 눌린 게 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정작 지나가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바쁘다.
엄마와 손잡고 걷고, 아빠는 아이를 위해 던킨 도넛을
사주고 가게 문을 열고 나가고, 횡단보도를 걷는
아의의 엄마가 보이고 그 옆에 아이는 손을 들고, 한 손은
엄마 손을 잡으며 그 작은 발걸음으로 당당하게 걷는
아이의 발걸음이 보이고..
남편과 나는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내 마음을 정리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오늘 미안해. 오빠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앞으로 행복을 위해서 이렇게 집을
구하고, 보여줬는데, 나는 그 순간에도 불어난 몸에
집착을 했어."
남편은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덤덤하게 내 말에 답했다.
아니, 이미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나도, 내 지금 튀어나온 뱃살에 신경 쓰여."
그 말이 왜 그렇게 위로가 되었는지.. 괜찮다는 그런
백마다 뻔한 위로 보다 나도..라는 그 말이..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거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눈물 대신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