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고모에게 전화가 왔다.
여김 없이, 술을 잔뜩 마신 말투였다.
"담연아... 나 너무 외로워."
다섯 번 결혼하고 여섯 번째
이혼을 한 예순셋의 고모..
징글징글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외롭다고 말하는 고모에게
나는 살인 충동이 얼어 날 만큼의 환멸을
느꼈다.
"나는... 물이 많아.
주기적으로 남자랑 해야 살아.
근데 왜 아무도 나를 안 봐주지..?
담연아.. 나 그렇게 별로야?"
"말 좀 해봐, 이 미친년아! 왜 말이 없어!"
"... 고모, 그냥 죽어. 제발."
"씨발년.. 너는 니 애미년 하고 똑같아.
돈 없어졌다고 우리 오빠 버리고.."
뚝-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참고 있던 눈물을 미친 듯이 쏟아 냈다.
고모에게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녀가 한 여자로서 너무 가여웠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움이란 뭘까. 증오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용서하고 싶다.
그녀가 내 방에서 했던, 그날의 일을.
나는 미치도록
한 여자를 용서하고 싶다.
펑펑 우는 나를
연우는 숨죽이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연우는 그날 나에게 어떤 말도, 이유도
묻지 않았고, 나는 그녀 옆에서
누가 잡아가도 모르게 곤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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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다녀왔습니다."
집안의 분위기는 알 수 없이
서늘했고, 고요했다.
그리고 내 방에 웬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때 내 나이, 중학교2학년.
엄마와 할머니의 표정은 어두웠다.
무슨 일이지?
이 소리는 또 뭐지?
"엄마, 무슨 일 있어?"
엄마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고, 내방문은
아주 살짝 열려 있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내 방 열린 문 사이를 보았다.
고모와 어떤 낯선 남자와 나체로
뒹굴고 있었고,
음식과 소주병들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누구라도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지만,
그 누구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아는 고모부는 어디 가고..
왠 낯선 남자..?
왜 엄마와 할머니는 보고만 있는 거지..?
나중에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그 남자는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 다니지 못했던
고모를 위해서 교복을 사주고,
돈도 줬다고 했다.
그렇다 한들.. 고모는 이미 결혼한 몸인데..
그렇게 며칠 후.
학교가 끝나고 집 가는 길.
길 한복판에서 고모는 고모부에게 머리를
뜯기고 있었고, 그걸 엄마는 말리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에도 엄마가 너무 미웠다.
왜, 도대체 왜.. 저 여자는..
바람을 피운 그 여자를 위해 술상을
차려주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도 않았고, 아니 이해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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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가 좋아하는 선배과자 집이 보인다.
어찌나 반갑고 기분이 좋았던지,
아저씨가 건네주는 봉지를 뜯고 마구 집어
담았다.
"10개에 3천 원."
연우가 유일하게 눈이 동그레 지면서 먹는
그 선배과자..
"선배과자 먹고 싶어.. 또 그 아저씨가 오겠지..?"
엄마가 나를 버린 그날.
나를 두고, 자살을 선택 한 그날.
엄마가 환희 웃으며 선배과자를 사 왔어.
엄마 손에 든 선배과자를 얼른 내빼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맛있게 먹었지.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먹다가 지쳐서
잠들었어..
그리고 학교를 가기 위해서 방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목을 매 죽어 있었어.
나는 전날 먹은 것을 다 토해냈어..
그 후로 나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
내가 본 세상은 온통 암흑이었어.
연우는 내가 사 온 선배과자를 오물오물
천천히 먹는다.
"엄마.."
연우는 엄마를 찾고 있었다.
나는 신기한 광경을 봐버렸다.
점점 연우의 모습이 선명해지고,
마치 하얀 도화지에 색을 친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