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하지 못했던 순간은 언제야?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정체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환경에 따라 내 정체성이 바뀌는 사람이였다. 지금도 그 사실에 대해서 크게 달라진건 없다. 하지만 인지 하고 사는것과 인지 조차 하지 못하고 사는것은 정말 큰 차이다. 환경에 따라서 나라는 사람이 달라지면 적응력이 매우 빨라진다는게 장점인데, 단점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 스스로 우울하게 나 자신을 만든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만큼, 적응 된곳에 오래 있으면, 스스로를 괴롭히고 기분을 가라앉게 한다. 그게 혼자면 상관 없는데, 내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까지 영향이 간다. 내가 그 아이를 만났을때도 그랬다. 나에게 없는 모습이 튀어나왔을때, 그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니였을 수 도 있다. 상대에게 맞추면서 살아가는게 너무 적응이 되었던 내가 나온 습관적인 행동일것이다. 우리집은 2년의 한번씩 꼭 이사를 다녔다. 그래서 나는 학교 다닐때, 친해질만 하면 이사를 갔고, 적응될만 하면 이사를 갔다. 그때 부터였을까. 나는 낯선 환경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다. 내가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가야 했고, 말을 걸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혼자가 되니까. 집에서도 나는 정을 붙히지 못해서, 힘들고 외로운데, 학교에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외향적으로 만들었던거 같다. 살아남기 위한 나의 몸부림이였을 것이다. 그런 생존 본능이 성인이 되어서 보니, 별로 크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방해가 될때가 더 많았다. 연애는 늘 짧게 강렬하게 빠르게 끝이 났고, 수리로 나의 연애 상대는 바뀌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이 나에게는 익숙해서 그렇게 했을것이다. 오히려 한 사람이 내게 오래 나와 인연이 되면, 그 상대는 힘들어서 먼저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나이가 드니 한가지 일에 정착하며 사는것이 잘사는것이 되었기에, 나의 환경 변화 적응력은 도움이 별로 되지 못했다. 서비스 업종이나 사람을 대하는 일은 잘하지만, 이런 일은 전문성이 없었다. 사회가 부모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틀에서 나는 어떻게 살려고 했고, 스스로 찾았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매일 해매이고 있다. 그렇다고 내 부모가 이 사회가 잘못 되었다는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그때 그 시간에 태어났기를 선택받은것이고, 지금의 부모를 만났것도 그냥 내 운명이였던것이다. 내가 아니였어도 다른 아이가 그 자리를 차지 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