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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마을 작은 도서관 | 선한 공간, 선한 사람들

제 3의 장소 : 유성구 작은 도서관 기행 (2)

by 나건

아파트 단지 와도 조금 떨어져 있고, 듬성듬성 자리한 주택 골목을 지나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그 길을 따라 유성구 봉명 희망마을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1층으로 들어서자, 도서관에서 ‘가을’을 주제로 큐레이션 된 활동지들과 조그마한 쉼터와 같은 공간이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벽면에는 도서관에서 활동했던 연혁들이 연도별로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2층에 올라서서는 책 꾸러미를 둘러싼 국화를 볼 수 있었고, 향긋한 향에 마음이 편안 해졌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더 아기자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한편에는 각종 공예품들이 가지런히 있었고, 곳곳에 비치된 꽃병 안에는 생화가 싱그럽게 자리했다. 따뜻한 밤색으로 뜨개질된 ‘책 바구니’가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모든 걸음과 시선에서 도서관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받는 공간이다. 잘 관리된 공간의 요소들은 정갈하고 수수한 윤택을 내며 각자의 본분을 지키는 듯했다.


나의 인터뷰에 응해 주신 선생님께서는 바쁘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고, 그를 꽉 쥐고 살아야 휩쓸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라고 하셨다. 그런 사회가 정화되고 바른길로 갈 수 있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도서관’인 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작은 도서관이 그런 책의 영향력을 조금씩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몇 해 전, 그림책을 공부하며 접한 영국이라는 나라에 큰 매력을 느끼셨다고 한다.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면 정부는 생애 주기에 맞춰 책 꾸러미를 선물한다. 가족이 이사를 갈 때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위치하는 것이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한다. 함께 도서관에 가 책을 읽기도 하고, 앞의 공터에서 농구를 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들에게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온 가족이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몇 해 전부터, 대부분의 도서관을 편안히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여느 나라들처럼 그 취지가 잘 활성화되어서 놀이터처럼 드나드는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하셨다.


도서관의 매력을 어필해 달라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하드웨어를 채우는 건 소프트웨어’라며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의 역량을 칭찬하셨다. 모든 선생님이 저마다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삶을 열심히 일구는 분들인데 그게 도서관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시는 거 같았다.

대화를 마치고 마저 도서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어린이 앉은뱅이책상 쪽에 계시던 분과 도서관 안쪽 성인 독서실에 계시던 분, 그리고 나와 인터뷰를 진행해 주신 선생님께서 가운데 테이블에 모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순서대로 가장 오래 봉사하신 분, 최근에 봉사를 시작하신 분, 두 번째로 봉사를 시작하신 분이었던 것이다.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목소리가 정겨웠다. 선생님들은 그 대화에 나도 자연스럽게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선한 공간의 선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함께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희망마을 작은 도서관은 국화가 피는 계절이면, 이용자에게 한 편의 시와 국화 화분 하나를 나누어 주는 행사를 한다. 도서관의 환경 미화를 돕는 봉사자분께서 운영하시는 작은 꽃집과 함께 준비하는 연례행사인 것이다. 도서관을 나서는 내게도 시와 국화를 쥐여 주며, 또 놀러 오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부로 국화의 꽃말은 ‘다정함’이 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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