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장소 : 유성구 작은 도서관 기행 (3)
행복한 공간. 이것저것 보태고 다듬어 가꾼 나의 삶을 통해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 행복이었으면서, 그 단어를 발음해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단 있게 행복을 외치던 선생님의 모습이 종종 떠오를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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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의 위치를 지도에 찍어 이동했다. 걷는 발걸음에 먼저 마주하게 된 것은 작은 도서관이 아니라 노은 도서관이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아무래도 여긴 부자들의 동네인 듯했다. 넓고 곧게 갈아 둔 땅덩어리에 단독주택이 하나하나 자리하고 있는데, 값비싼 건축가의 손길을 거친 듯이 유려했다. 그런 집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옆에 노은 도서관이 있었다. 궁금해졌다. 이런 곳에 있는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지,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이 공공 도서관에 먼저 들어갔다.
도서관은 최근 인테리어를 끝마친 듯 나무 가루의 냄새가 났다. 아주 깔끔하고, 지저분해져서는 안 될 거 같은 -조금은 신성하게까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내가 방문한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그런데도 중장년층의 어른들이 한편에 노트와 연필을 두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 한창 경제인구로 활동할 나이대에, 한참 업무를 보고 있어야 할 시간에,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공공도서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작은 도서관이라니. 왠지 내가 다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종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나와 다시 작은 도서관을 찾았다. 위치상으로 부자주택 옆에 있는 한 세대 자리 아파트로 찍히기에, 아파트 내의 작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층 로비에 들어가도, 주변을 삥 둘러봐도 도서관이라고 할 법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건물 안을 파고들다가 이 아파트 안에는 영어 특화 유치원 혹은 학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꽤 깐깐한 보안을 지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스스로 찾는 것을 포기하고 작은 도서관에 전화를 걸었다. 곧 통화음이 연결되었고 나는 도서관의 위치와 입주민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지 여쭈었다. 전화 속 상대는 ‘우리는 그런 곳이 아니라며’, ‘누구든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도서관의 위치를 안내해 주었다. 설명에 따라 건물을 바깥으로 둘러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으로 내려가 보니 도서관이 보였다. ‘행복한 작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의 외벽에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설명하는 글이 붙어 있었다. ‘행복한 작은 도서관’, ‘한국 행복 재단’, ‘행복 공동체’…. 사람이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문을 열어 나를 발견하곤, 이리로 오시라고 안내해 주셨다.
나를 도서관 안으로 안내해 주신 분이 입구와 가까운 쪽의 자리에 앉으며 안쪽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이 도서관의 관장님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관장님은 도서관을 설립하기 이전에 장애인 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계셨다. 도서관은 장애인 분들이 활동을 하기 이전 낮 시간에 머무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되었다. 그 목적은 점차 구체화되고 명확 해지며 ‘문화적 접근성을 높이자’라는 비전을 품게 되었다. ‘문화가 융성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라는 생각 아래 책 읽는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에 이바지할 것과 장애인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문화적 혜택을 줄 것을 목표로 작은 도서관은 움직인다. 이를 이야기하며 선생님께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하셨지만, 나에겐 충분히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유였다.
나는 이 작은 도서관이 아파트 내 도서관인 줄 착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도서관은 아파트와는 관계가 없는 도서관이라고 답하시며,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 주셨다. 1994년 주택법 개정에 의해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을 지을 때는 작은 도서관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한 이후로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 내에서 도서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야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 해당하는 인건비나 충분한 보조금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봉사를 요구 혹은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본래 취지대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운영자가 걸음 한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작은 도서관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사람이 아파트 단지마다 충분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전제이다. 아파트 단지 내 작은 도서관이 명분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땅한 지원 정책을 실현하거나, 봉사자들이 애정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봉사할 수 있을 작은 도서관만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셨다.
선생님에 따르면 작은 도서관의 역할은 ‘평생교육’에 있다. 지역 장애인과 주민이 작은 도서관에 모여 새로운 진로, 취향 등을 탐색하며 자유롭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과 단체가 다양해졌다고 한다. 그의 생각에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단지 내 작은 도서관도, 평생 교육이라는 큰 근본을 잃은 작은 도서관들도, 더 이상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규모도 작고, 제대로 된 지원도, 전문적 인력도 없는 작은 도서관이 도시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도서관을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위태로운 현 상황에 대해 대화 나누면서도, 도서관에 오시는 이용자에 대한 이야기, 지금까지 진행했던 흥미로운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목소리는 한껏 상기되어 내려올 줄 몰랐다. ‘행복한 건 좋다. 더 많이 행복해지자’라는 취지로 이름 붙여진 ‘행복한 작은 도서관’. 선생님께서는 작은 도서관의 가능성을 고대한다고 하셨다. 사회 공동체들 사이의 틈에서 작은 도서관의 필요ㅌ성이 반짝이게 될 가능성. 행복한 공간에서, 함께 행복을 쌓아 나가게 될 가능성. 이런 사소한 희망들이 행복한 작은 도서관의 명맥을 유지하는 동력인 거 같았다.
대화를 나눈 후에 서가를 구경했다. 이야기를 나눈 사무실 공간 맞은편으로 동일한 크기의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독서할 수 있는 장소였다. 복지 시설로 이동하기 이전에 장애인 분들이 여가를 보내고 계셨다. 나는 이 공간의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분들께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오므려 ‘브이’하고 포즈를 잡아 주셨다. 편안히 대해 주시는 마음에 되려 차분해졌다.
행복한 공간. 이것저것 보태고 다듬어 가꾼 나의 삶을 통해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 행복이었으면서, 그 단어를 발음해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단 있게 행복을 외치던 선생님의 모습이 종종 떠오를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