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당탕탕 작은 도서관 | Shelther

제 3의 장소 : 유성구 작은 도서관 기행 (4)

by 나건

답사를 떠나기 전 동선에 따라 위치한 작은 도서관을 살피는 중이었다. ‘우당탕탕 작은 도서관’이라니. 이름 한 번 왁자지껄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지도로는 도서관에 대한 어떤 정보도 확인할 수 없었다. 소개 글도, 사진도, 리뷰도 없었다. 작은 도서관 사이트를 참고하니, 개관한 지 5개월 된 따끈따끈한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의 이름과 신생 도서관이라는 요소가 나의 궁금증을 키웠다.


길이 세지 않도록 지도만 뚫어져라 보며 걷다가 목적지 앞에 다다랐다. 마침 건물 앞에 주차를 마친 어떤 분께서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어봐 주셨다. 작은 도서관을 구경하러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잘 왔다고 반기며 건물로 들어가 도서관의 문을 열어 안내하셨다.

문을 열어 주신 선생님을 뒤따라가며 나를 소개했다. 문헌정보학과 학생이라는 말에 반색하시며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나에게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마친 후에 나에게 -도서관과 관련하여- 궁금한 것들을 질문해도 될지 여쭈셨다. 개관한 지 5개월밖에 안된 작은 도서관이라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노고가 많으셨던 거 같다. 나 역시도 전공 지식이 무르익지 않은 터라 자신은 없었지만, 최선으로 답변드리겠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처음 들어서서는 ‘새롭다’고 생각했다. 마치 카페 같은 인테리어였다. 공간의 모서리를 둘러싼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고 가운데 공간에는 단체로 활동을 진행할 수 있을 만한 넓은 테이블이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와 가장 먼저 보이는 위치에 마치 카페 카운터 같은 공간과 메뉴 판(?)이 있었다. 카운터 상단에 “도서관에 오니까 참 좋다!”라는 표기가 없었더라면 흠칫 잘못 들른 공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도서관’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 새로운 시도인 거 같아 오히려 신선했다.


도서관 맞은편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때문에 하교 후 친구들과 놀 거리를 찾는 아이, 다음 학원 시간까지 머물 곳이 필요한 아이, 부모님의 퇴근까지 기다리는 아이처럼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안전한 보호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했다. 도서관과 학교를 건너오는 길목에 신호등이 없어 시에 신호등 설치를 요구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길거리의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섬세히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우당탕탕 도서관’이라는 이름은 공모를 통해 당선된 것이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정적으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뜻이 모여 최종 결정되었다. 선생님께서도 책을 읽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하나라고 느껴지도록 노력해 나가고 싶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잘 읽지 않아-책을 너무 읽지 않아-도서관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큰 거 같으셨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려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견 나누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싶었다. 책을 꼭 읽지 않더라도, 또래와 함께 할 수 있는 학교 외의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도서관의 존재는 의미가 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만한 도서로 차근히 서가를 채우고, 책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만들면서 점차 이 공간에서 책 읽는 것 역시도 편하게 느끼도록 하면 되었다. 무엇보다도 도서관에 온 아이들은 책 사이에서 놀고 있다. 이미 책에 대한 접근성은 확보되었으니, 그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조금의 섬세한 작업만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한 아이와 부부가 도서관에 들어왔다. 독일에서 한국에 놀러 온 한국인-독일 가족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와 도서관 내부의 이곳저곳을 관찰하듯 살피다가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에 녹아들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키즈 카페에 대한 감상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가자니 아이들이 ‘주’가 되는 공간이라 부모가 소외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하는 곳이나 카페에 아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동네 도서관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하셨다. 아이도, 부모도 ‘주’가 되며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 어쩌면 이는 작은 도서관만이 가질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네 도서관은 아이와 차를 타고 멀리 나갈 것도 없고, 큰 건널목을 건널 것도 없이 아이와 부모라는 두 역할이 모두 존중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가깝고, 안전하며, 편안한 장소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은 또 하나의 권리가 된다.


선생님은 한 번 방문한 아이를 기억해 두고두고 이름을 불러 주신다고 한다. 다정한 관계를 맺고 아이들을 외롭지 않게 돌봐 주고자 마음 쓰신다. 누군가와 정서적 교류를 나누는 것이 더욱이 어려워지는 일상 속에서 선생님은 여전한 다정함으로 남고 싶으신 것 같았다. 아이들은 이름을 부르며 반겨주면 오래, 그리고 자주 머문다. 그런 아이들이 하나 둘 친구와 손잡고 모여 도서관에 머물며, 어른으로선 상상도 못 한 룰로 보드게임을 하거나, 우연히 제목이 끌리는 도서를 발견해 책장을 넘겨 보기도 한다. 또는 어린아이와 부모가 함께 방문해 두 사람 모두가 존중받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런 역할을 지닐 수 있는 건 작은 도서관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스러운 장점이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행복한 작은 도서관 |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