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뒤집힌 모래시계
나는 다시 모든 것에 새롭게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연차로 치면 4년 차 직장인이지만, 모르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다른 곳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과 지낸다는 건 맞지 않는 신발을 하루 종일 신는 것과 같다. 뒤꿈치가 아프지만 남한테는 안 보이고 나 혼자만 느낄 수 있는 가장 바닥에서 올라오는 밑의 감각. 무척이나 고달프고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내가 박차고 나오고 선택한 길인 것을.
연말, 연초 그리고 이직으로 글을 쓰지 못했다. 쉬는 2달 동안 내 마음대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회사 중심으로 바꾸자니 이것 또한 힘에 부쳤다. 평일 퇴근 후에는 지쳐 쓰러지고 주말에는 잠만 잤다. 2025년 버킷리스트에 적힌 ‘글 꾸준히 써서 출판하기’ 항목이 양심에 찔릴 정도가 되니, 한 달이 흘러 2월이 되어 있었다.
첫 이직의 소감은 복잡 미묘하고 멜랑콜리하다. ‘참,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했군’ 정도가 적절하겠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니면 그 사람들과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전문성이 생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사고와 감정이 고착화돼 가는 길이기도 하다. 모르는 게 투성이인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건, 하나하나 흘러가 아래로, 아래로, 쌓인 작은 모래시계의 모래알들을 거침없이 뒤집어 버리는 것과 같다. 다시 저 밑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야 하는 그런 모래시계. 다시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원래 성격보다 더 밝고 긍정적이게 그러면서도 예의 있게 행동해야 하고 그 ‘노력’이라는 놈도 어김없이 가미되어야 한다. 이 시간들이 힘들지만, 이 시간에 나는 잠식되진 않는다. 4년간의 경험이 헛되진 않은 듯하다. 나는 4년 전에 비해 나를 더 잘 알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이 힘든 시간 속에서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인내의 시간과 그 시절 미숙한 나를 곁에서 바라봐준 사람들, 이것들을 통해 나는 거친 파도에서 침몰하지 않고 수영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 나의 미숙함과 어리석음, 나약함을 견뎌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 사람들이 나의 어리석음에 지쳐 떠나갔든, 지금까지 내 옆에 있든 나를 거친 모든 사람들과 경험들이 나를 키웠다.
나이가 들어 좋다는 건, 바뀌는 환경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관록, 여유 그리고 성찰이 세월에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나로부터 축적된 현재의 나는 이렇게 거슬러 올라간 모래시계 역(易) 시간을 견뎌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