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인셋 Jun 05. 2023

실험, 실습, 체험은 재밌나요?

준비는 죽을 맛


나도 실험 몇 번 해보고 좋아서 이 길로 들어섰으니 실습준비가 힘들단 소릴 하면 안 된다. 학생들의 어설픈 손과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 귀엽고,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 나는 저랬을까 싶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내 설명이 부족해 저 아이들에게 평생 갈지도 모를 흥미를 꺾어버릴 일만은 없기를 바란다. 학교보다 회사에서 개인을 가르칠 일은 훨씬 많았고, 다수를 가르쳐본 일은 대학원에서 실습조교로, 연구실에서 체험을 위해 찾아오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많지는 않았어도 말을 더듬지 않을 정도는 된다.


처음은 막막했다. 어째서 교수님이 아닌 내가.. 학생들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있을 터였고, 나 또한 반대의 입장일 땐 실습은 꽤 재밌으면서도 사전준비나 레포트에는 좀 모자란, 딱 B+ 언저리의 학생이었음을 채점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명확히 알겠더라. 겉핥기식의, 내 것이 아닌 공부 같았을 때보다는 내 분야가 된 뒤엔 배우기도 가르치기도 훨씬 할 만 해졌다.




한 클래스의 학생 수가 너무 많으면 커리큘럼이나 수업방식을 손 보는 것보다 (이 부분은 원래 나의 영역이 아닐 때도 많다.) 실험 도구 및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훨씬 큰일이 된다. 실습 전날부터 준비를 하느라 내 실험은 아예 접어두어야 하는 때도 많다. (당시 나의 본분은 내 연구를 해야 할 대학원생이었으므로.) 편의상, 학생 수만큼 제공하지 못할 것, 위험하거나 정교해야 할 것 등은 내가 대신할 수도 있지만, 되도록 많은 친구들이 많은 경험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실습이다. 하지만 흥미를 유도할 만한 공동의 결과물을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서, 그 사이 균형을 찾는 실험을 계획하는 게 학습만족도에 영향을 미친다.


튜브나 시료를 몇 백개씩 준비하는 건 차라리 괜찮다. 연구실에서야 노상 하는 실험에 필요한 모든 것이 그 동선 안에 갖춰져 있지만, 캠핑 가서 요리 한 번 하려면 아, 이런 것도 필요했지 싶은 사소한 준비물 하나하나를 다 챙겨가야 하는 것처럼, 나가서 하는 실험도 그렇다. 마땅찮은 장비나, 그룹마다 부족한 피펫을 다른 곳에서 빌리기도 한다. 주로 내가 다룬 커리큘럼엔 미생물 배양이나 DNA 단위의 실험이 많아서, 식품 위생 실험에는 미생물 종류별로 선별배지를 공급하느라 한 번에 수백 장의 고형배지를, DNA확인을 위한 agarose gel을 수십 장씩 만들기도 한다. 실험할 재료를 찾겠다고 횟집 앞을 서성이게 되는 때도 있다.


그것도 내 일이라면, 준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실습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장비를 망치는 일이다. 그 장비를 늘 써야 할 사람은 연구실 사람들인데, 한 번의 잘못된 조작에 내내 조심해 오던 발암물질이 묻어 오염되거나, 장비를 모두 들어내고 청소를 해야 하거나, 수리를 맡길 일이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피펫팅이 익숙하지 않을 학생들은 주의사항을 들었어도 쉽게 피펫을 뒤집거나 버튼을 튕기는 등의 행위로 피펫 내에 용액이 들어가게 만들어서, 가끔 실습날은 기사님의 방문을 직접 청하는 날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피펫은 절대 제외시킬 수 없는 기본장비일 때가 많아서, 우린 더 일찍 이런 걸 배워봐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다.


같은 설명을 듣고 움직여도 상상하지 못할 기발한 실수가 천차만별로 발생하기도 한다. 경험이란 게 그런 모양이다. 그럴 땐 순간 움찔했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아이들에게 하나같이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만 쳐다보고 있을 때, 식은땀이 나지만 최대한 임기응변을 발휘해줘야 한다. DNA확인을 위해 전기영동을 하자고, well에 각자의 sample을 loading 해봅시다-라고 하고선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본다. 계속 well이 어딨 어요 안 보여요 하는 학생, 제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에 sample을 넣어버린 학생, gel에 구멍을 뚫어 sample을 날려버린 학생, 기껏 잘 해놓고는 다시 피펫팅 해버린 학생, 깊이를 가늠치 못하고 buffer에 흩뿌려버린 학생, 아예 친구들이 모두 loading을 마친 gel을 엎어버린 학생.. 대환장 파티다.


그러고 나선 아무리 좋은 결과를 보여주려고 사진을 수정해 봐도 band는 들쭉날쭉, 흐리멍덩한 사진을 내밀자니 얼마나 실망할까 싶어서 내가 다 미안해진다. 그런 실수들이 모여있어 그렇지, 어쩌면 나도 언젠가 다 해봤던 실수다. 그런 실수가 우스운 지금이 되기까지 몇 장의 gel을 만들고 몇 개의 sample을 loading 해봤을까. 그렇게 배워서 정돈되고, 다듬어지는 우리다. 그 순간 나는 그 손이, 그 차이가 꽤 신기했더랬다.




학부생들은 그렇게 실습 때에도, 연구실에서도 대학원생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가르치는 게 가장 궁극의 공부라고 하듯이, 잊고 있던 것을 새로 배우기도, 연구실 유지운영에 도움을 받기도, 대체로 연구실에 자기 동굴 하나씩 파고 앉아있는 대학원생들의 활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그런 시각이 필요한 때도 있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며 문구점에 실험키트가 판매되고 있는 걸 알았고, 티비 육아 프로그램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과학실험을 해주는 걸 종종 봤다. 나는 그런 모습이 좀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물론 흥미는 중요하다. 모든 학습과 경험이 흥미에서부터 심화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유도하지 못하고 원리를 함께 고민해주지 못할 거라면 그건 과학을 해줬다고 위안삼을 수 있을까. 소리와 빛으로만 번쩍거리는 장난감들처럼, 일회성의 재미를 위한 놀이로만 과학을 접하는 건 길게 봐도 썩 좋지 않다. 과학을 온통 재밌는 실험으로만 다 배울 순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억지로 찾아야 하는 게 아니다. 굳이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과학은 생활에 널려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품질관리, 그거 할 게 못 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