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는 흘리고 다니면 안 될지도
그런 상상을 해본 일 있는가. 누군가 내 몸의, 내 생체정보를 빼내갈 수 있다면. 휴대폰 하나, 번호 하나만 있으면 (마음만 먹는다면) 어마어마한 정보를 캐낼 수 있는 시대다. 머리카락과 칫솔 하나로 친자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지문 하나 혈흔 하나로 범인을 찾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이런 생각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과학수사, 그런 기술에 감탄할 때도 좀 지났고, 그런 게 조금 익숙해지고 가까워지니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마약이 우리도 모르는 새 무섭게 생활에 가까이 침투해 오는 것처럼 누가 내 생체정보를 훔칠 수 있다면 어쩌나. 사람이 아무리 조심해도 머리카락, 땀, 각질.. 이런 걸 흘리고 다닐 수밖에 없지 않나.
계속해서 자라나는 데다 비교적 채취가 용이한 상피세포나, 체액 또는 분비물들이 문제다. 온몸을 둘러싸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특히 그중 머리카락은 모근을 통하면 아주 정확한 유전자검사가 가능하고, 우리 몸의 영양상태가 시간순서로 축적되고 있는 모발 부위로는 약물검사가 가능하다. 질병을 예측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다.
내가 몇 개월내에 무엇을 섭취했는지, 나의 생김새와 신체적 특성은, 내게 어떤 변이가 있고 어떤 질환에 취약한지, 무엇을 선호하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행동학적 특성은 어떤지, 유전될 특성은 무엇인지.. 유전자 지도가 더 정확해져 갈수록 그런 위험도 더 커질지 모른다. 크리스퍼 (CRISPR) 기술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
기술적으로는 점점 더 완벽에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가 병원에 가야, 각종 검사를 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들. (인간의 이해로는 해독이면 끝일 줄 알았던 게놈 프로젝트처럼 완성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생체정보가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이용할만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쪽으로든 나쁜 의도를 가진 것들은 범인은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치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방법이 마련되면 그다음은 그것이 범죄의 영역에 들게 할 수 있을지, 국가에서 우릴 보호해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우리의 생체정보는 보호받을 수 있을까. 개인으로부터, 또는 국가로부터. 우리는 개인식별에 여전히 지문이 사용되고, DNA법이 논란이 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미 생체정보 활용은 다방면으로 우리 생활에 녹아들어 있다. 지문, 손 모양, 귀 모양, 음성인식, 홍채, 망막, 혈관, 얼굴인식, 걸음걸이, 필적인식.. 그 편리성과 다른 곳에 활용될 경우의 이중성, 도난과 변형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체인식이 도입되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많은 우려가 있어왔다. 새삼 과거에 상상만 했던 최첨단의 모습이 이미 내가 사는 시점이었다는 걸, 그렇게 대단하게 느끼고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아직은 개인식별의 수단으로 범죄에 이용되고, 개인 의료정보가 굳이 생체정보를 캐내는 것보다 쉽겠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성큼 다가와있는 미래처럼, 언젠가는 정말 내 신체정보를 흘리고 다니는 데 경각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