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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Jun 08. 2023

행동도 환경도 유전자에 기록되는 중

후손에게 물려질 예정


인체의 on/off 시스템을 처음 배움으로 접했을 땐 너무 단순해서 억울하고, 그런 조절이 한두 군데서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알고서는 꽤나 효율적인 도구라는 것이 조금 와닿았다. 아직도 일부 '억제'가 기본이고, 변형에 의해 on이 되는 작용들에 대해서는 퍽 신기하다. 우리 몸의 조절은 그렇게 단순하게 근사하다. 그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많은 형질들을 유전되는 것, 그리고 환경에 의한 것으로 나누어 구분 짓곤 한다. 예를 들면 키 같은 것. 유전과 환경의 영향이 반반이라 생각하는 부분조차 어쩐지 부모는 환경으로 바뀔 수 있다며, 자식 입장에선 타고나는 거라며 각자의 입장에 합당한 이해를 해보려 한다.




우리의 유전자는 AGCT의 단순한 염기 서열들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유전자는 타고나지만 조금씩 변형될 수 있고, 이미 정교하게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유전자의 random mutation은 좋지 못한 결과로 가기가 훨씬 쉽다. 정리하는 것보다 어지르는 방법이 훨씬 다양한 것처럼. 유전자의 변이 말고도 유전자의 작용과 발현 여부를 바꾸는 것들이 있다.


후성유전학. 유전자는 아니면서 유전자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껐다 켜는 조작과 조합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간단한 조작이 모여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는 세월의 흐름 뒤에는 여러 차이가 생기고 마는 일란성쌍둥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후성유전학적 측면의 유전자 변화는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CpG 부위에 발생하는 DNA methylation, histone modification, miRNA regulation 등에 의해 발생하는데, 물리적으로 다양한 분자나 효소들이 작용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쓰임이 없는 부위에 유전자의 활용을 기록하는 것과 같다.


흔히 전쟁을 겪은 이들이 트라우마가 되어 음식을 많이 먹게 되었다든지, 과도한 특정 스트레스로 행동이 바뀌는 것을 보고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환경, 그리고 단지 기호인 줄만 알았던 식습관, 생활습관 같은 것들은 그렇게 개인을 변화시키고 유전자의 쓰임으로 기록되어 후손에게 물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것 역시 유전자가 아닌, 조상의 환경에서 온 것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후성유전학이 활용되는 곳은 주로 자가면역 질환이나 암, 영아 발달과 산모에 관한 연구, 당뇨와 비만, 신경학이나 심혈관질환, 행동학 등 사실상 대부분의 의약학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암에서의 유전자 발현 조절 연구가 활발한데, hypermethylation에 의해 암 억제 유전자의 promoter가 작동하지 못하게 되거나 DNA 전체에 methylation이 감소하는 등의 변화로 인해 암이 유발된다는 기전이 익히 알려져 있다.


이토록 간단한 것 같지만 유전자의 on/off 조작은 관련조직이나 세포에 특이적이면서도 체내에서는 하나의 계를 통해 조절되는 측면이 있어 아직 이를 활용하고 다루기까지는 많은 연구가 더 필요하다. 또한, 치료에 적용될 경우 개인 유전정보 노출의 우려가 있어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도 충분히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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