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일 다 하고, 나만 욕 다 먹어야 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품질관리를 대하는 태도는 아직도 많이, 많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조금 맛보았을 뿐이지만 경험한 것, 보고들은 것, 배운 것 모두를 놓고 보아도 그렇다. 남들도 하니까, 해외수출 하려면, 인증받으려면 그만큼 관리된 생산시설에서 일정한, 기준 이상의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소비자와 기업의 입장에서 품질관리는 장기적으로 유익하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소비는 신뢰에서 발생하고, 그 신뢰를 가져다주는 일이 품질을 컨트롤하는 일이다. 그 일을 하는 입장에서는 어떨까.
품질을 관리하는 부서는 포지션이 특이하다. 회사에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 고용했고 내부의 지저분하다 할만한 문제들이 마지막까지 모여 걸러지는 최후의 보루 같은 곳임에도 그 회사 안의 모두에게 공공의 적이다. 늘 어느 팀에나 딴지를 걸어야 하는 그 정체성은 마치 다른 모두를 귀찮게하러 오는 외부의 적인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워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모두에게 미움받는 동네 북일뿐이다.
어지간히 꼼꼼하지 않고는 그 일을 배겨내기 힘들다. 자꾸만 갱신되는 법령, 시험법, 국제기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시기마다 구비해두어야 하는 서류들, 내부적으로는 생산설비, 실험장비, 트랩 하나, 쓰레기통 하나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작업화 하나, 건물 틈새 하나 없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문서가, 일상적으로는 생산에서의 문제발생이 주요한 이슈이면서도 (어쩜 그리 만들 때마다 다른 문제가 터지는지..) 고질적인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연구개발이 필요하거나, 새 장비가 필요해서 지원팀과 의논해야 하거나, 생산 일정에 품질로 인한 차질이 생겨 영업팀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결재권자를 설득하는 일, 거래처와의 미팅, 감사 시기와 인증절차마다 서류를 놓고 안에서 기관에서 허둥지둥, 외부에서 욕먹고 와 안에서 또 혼나는 일도 허다하다. 개인적으로는 깐깐하다는 그 일 자체보다, 저토록 많은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협업해야 하면서 늘 따지고 설득하는 게 아니면 혼나는 게 일이라는 데서 한없이 지쳤다. 그다지 보람도 느끼지 못했다. 일 잘한다는 인정이라도 받고, 또 한숨 돌렸네 하는 혼자만의 위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다.
아직도 인식이 한참 멀었다고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저 기준을 맞춰야 해서 갖춰놓은, 할 일은 많아 늘 인력난에 시달리는 팀이 기업에서도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그 경영진의 인식이 바깥에도 미친다. 다른 곳이 아닌 품질 쪽에서 문제가 터지면 대형사고다. 컴플레인, 거래가 끊기거나 영업 정지를 겪은 일도 있다. 그냥 쪼아대고, 한 번 어떻게 넘겼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땜질만 해대는 건 미래가 없다. 그래 품질, 좋지. 새 설비, 더 많은 인력, 더 깨끗한 소모품들, 안타깝게도 모든 문제는 돈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나는 경영진이어 본 적이 없어서 그 속내까지는 모른다.)
그 일을 그만두면서 품질관리가 잘 되려면 그 팀은 어느 곳보다도 독립적이고, 힘이 있어야 하며, 팀 내 분위기는 수평적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품질이 일정하게 문제없이 유지되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모든 톱니바퀴가 문제없이 굴러가야 한다. 힘이 없는 곳에서 톱니바퀴 하나하나를 모두 컨트롤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평적이지 못한 곳에서 독박처럼 너희가 발견한 문제이니 너희가 다 해결하라는 분위기가 되었을 땐, 주요 업무도 아닌 잡일에 지치다 못해 상부의 누군가가 일을 조용히 덮거나 적극적으로 조작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문제제기를 하는 자는 늘 모두에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그것이 정말 터져버리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몇 개나 되는 시한폭탄을 들고 지낸다. 끄려고 하면 반대하고, 누구에게 줄 수도 내버려 둘 수도 없어 나만 쩔쩔매는.
품질관리라는 일을 못하겠다 마음먹은 건 내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로 늘 나만 죄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싫은 소릴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늘 어딘가에선 거짓말을 해야 했고, 장비도 사람도 나를 속 썩이기만 했기 때문이다. 펑펑 터져대는 마이너스의 문제들을 메우려 뛰어다니는 일은 힘들었다. 늘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 맘이 편한 내 성향에는, 그렇게 마감 직전의, 이미 터져버린 것들을 수습하는 것이 안 맞았다. 후에 잘해야 본전인 일이라서, 더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서는 아니었나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맞았다.
연구개발은 그럴 일은 없었다. 끊이지 않는 전화통화로 고통받는 일도, 대우받지 못할 일도 없었다. 물론 더 빨리 만들어내라는 독촉이나 연구비를 따야 한다는 부담, 실험의 한 단계를 넘어서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어쨌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플러스의 일이어서 예술가의 창작의 고통과도 비슷한 것 인지 모르겠지만, 보람과 자기만족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일을 굳이 비교를 하려 한다면 단지 개인의 경험이고 취향일 뿐일 수도 있지만, 나는 품질관리라는 일 자체는 굉장히 매력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 돌아보고 싶지 않은 일이다.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속성과, 그 일을 무시하는 분위기와, 넘어가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인식들 속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다치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