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독려하는 글
몇 번 알림이 왔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으니 매일 쓰며 단련해야 한다고. 쓰지 못하고 멈춰버린 내겐 고마운 말이었다. 글이 유독 술술 써질 때가 있다. 진지한 생각은 많되 들끓지 않아서 내가 지그시 누를 수 있을 때. 딱 그 정도가 적당하다. 그 시기를 찾고 있다.
사실은 좀 바쁘기도 했다. 다 핑계일까.
떠오르는 글감을 한 문장으로 적어둔 것이 30여 개는 쌓여 있었지만 한 번 멈추니 풀기 어려웠다. 어떻게 푸는 거더라.. 난 지금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이 깨어 꼴딱 새벽을 넘기고 빛이 어스름하게 밝아올 때, 꼭 그럴 때 견디지 못하고 글을 쓴다. 적어도 한동안은 내게 글이 1순위가 아니었던 탓이다.
그래서, 바쁜 건 바쁜 거지만 삶이 나아졌냐 하면 옳게 길들여보려던 습관이 제자리로 돌아가버린 느낌이다. 힘들었으니 괜찮아, 이 정도는 쉬어도 되잖아, 라며. 그래도 매일같이 반년을 써온 글인데, 이렇게 쉽게? 쉽더라. 사람은 참 편한 것을 찾는 데 쓸데없이 유능하다.
급할 때 아이 맡길 곳 하나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한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아주 조금의 보람이나 효용성을 느끼게 했고, 그보다 조금 더 큰 것이 가계를 놓고 한숨 돌리게 된 마음, 또한 그보다 더 큰 건 아이가 아프면 어쩌나 하는 긴장에 깊이 이루지 못한 아침잠과, 저녁에도 엉덩이 한 번 붙일 새 없이 몰아치는 집안일 이후 채 열 시가 되기 전 방전되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였다.
컨트롤할 수 없는 하루 끝 그 내가 나의 최종 자아로 스스로에게 각인되어 가는 와중, 적당한 수준의 적응과 만족감을 찾아가고 있다. 효용성과 일에 대한 가치관은 많이 달라지고 무뎌진 채로, 누군가에겐 퇴보로 보일 거라 생각하며 (그 누군가는 과거의 나였을 지도) 벼린 날을 조금 내려놓는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걱정은 아이에게 쓰이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서.
가치관의 변화를 믿어본 적 있는가. 이렇게 조용히 깨닫는 나의 변화는 씁쓸하고, 또 신기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서도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선 어떤 선을 나 혼자 넘어왔고, 공감능력이 꽤 좋은 남편이라도 종종 저 먼 곳에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 발걸음을 이제야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참 잘해주었던 것처럼, 내가 힘들 때마다 그렇게 맞추어 살아간다.
역시, 써보라 해서 썼지만 정돈되지 않은 생각은 이렇게 티가 난다. 다시 시작은 가벼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