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잃는 이유

32도

by 포인셋

이미 10여년 전, 어린 사촌동생의 말에 너무 놀랐던 적이 있다.

"난 결혼하지 않고 엄마아빠와 평생 살 거예요. 엄마아빠가 날 먹여살려줄 거고 그럼 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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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는 빠르게 해 온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이제야 처절하게 겪고 있는 것 같다.

교육, 환경, 정치, 생명, 도덕적 가치도 무너지고 모든 개인과 집단 간 이익갈등은 심해졌다. 가치의 최우선순위로 돈을 꼽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질러도 벌 받지 않고, 정직하게 돈 벌기는 너무 어렵고, 돈만 준다면 감옥에도 가겠다고 한다. ​


돈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가장 쉬운 방법으로 무언가를 얻길 원한다는 뜻이다. 기술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때로 너무 발전한 기술은 돈과도 속성이 같다.

쉽게 얻는 남의 노동과 정보, 너무 많은 소모성 컨텐츠, 재미와 일상의 낭비, 그리고 남들과의 비교,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돈을 가진 소비자는 권력을 갖고, 결론은 뻔하다.

이렇게 많은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이 소중하게 느껴질 리도 없고, 그것을 만들어 내기까지 남의 노력과 노동이 가치있게 느껴질 리도 없다.

무언가를 얻을 때 지불해야 하는 값과 내가 생산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값의 균형이 무너졌고, 결국 내가 하는 노동만 너무 어렵고 힘든게 됐다. 열정은 사라졌다. 열정을 가질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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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필수적인 것보다, 시간과 노동을 줄이고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넘쳐난다. 너무 편하다. 움직이지 않고 많은 일을 하고 운동을 따로 해야만 내 몸을 유지할 수 있고, 단지 이 편리함에 소모되는 환경의 댓가도 너무 크다.

그렇게 아껴진 시간에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 삶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 더 돈을 벌거나 놀이를 해야겠지. 하지만 이 굴레가 문제다. 돈을 버는 건 재미가 없다.

너무 편한 삶이 문제였던거다.

나는 때로 2000년대 초쯤 기술의 발전이 멈추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모두 자신의 10-20대를 생각할 지 모른다. 그 때가 가장 낭만적이니까)​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로 어디든 다닐 만 했고, 인터넷은 지금보단 못했겠지만 글자 수의 제한이 있던 문자로는 꼭 필요한 말만 나누었으며, 몇 곡 저장되지 않던 mp3도 나름대로 낭만이 있었다.

아마 꽤 살 만 했을 것이다.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여전히 의료 같은 분야는 더 발전하는게 좋겠지만.

가끔 돈과 기술의 발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쓰이는 것이 맞는지, 인간의 가치와 부합하는지,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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