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도
예전보단 치매 이야기를 접하기 쉬워졌다.
중증의 상태를 떠올리기가 쉽지만, 실은 그저 누군가의 이름이나 과거의 일을 헷갈려하는 정도로 가벼운 건망증, 우울증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을 지도.
예전에 잘 모를 때는 단일 질환으로 많이 생각했고, 슬프고 위험하고 아련한 그런 것으로 그려졌던 것 같은데..
그보단 훨씬 더 복잡하고, 깔끔치 못할 수도 있고, 폭력적이거나 위험할 수도 있고, 많은 경우 긴 돌봄때문에 슬픔조차 빛이 바랠 정도의 갈등과 경제적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경험해보기 전엔 알기 힘든 것 같다.
이렇게 흔하게 겪을 수 있는 문제인데도 그런 일이 더 가까울 어르신들 또한 여전히 굉장히 불순하고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나쁜 질환으로 여기기도 해서 인지기능 향상을 위한 영양제들을 추천해 드렸을 때 기분나빠 하실 수도 있다는 걸 알고는 놀라기도 했었지.
나야 그저 기억력이 좋아지면 좋은거니까, 안 걸리고 싶지만 내 의지로 어떤 질환을 피해 갈 수도 없으며, 미래에 혹시나 가족 고생을 덜 수 있다면 뭐든 먹을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기억을 잃는 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겐 너무나 치명적이다. 자식의 이름도, 멈춰버린 세월도, 이승에 남은 마지막 미련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나 자신의 몫에 더해 바라보는 주변인의 고통이 함께한다는 사실이 더 힘든게 아닐까.
부모의 치매에 나 자신의 어린 날과 날 보살피던 부모의 모습을 떠올려 그처럼 돌볼 마음이 생긴다면 그 또한 다행일 것이다. 이가 없고 소화가 더뎌 아이 반찬같은 말간 국을 찾으시고, 저 이가 내 손수건을 훔쳐갔네-텃세를 했네 라며 손을 붙잡고 아이처럼 우는 할머니의 모습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내가 엄마의 손을 그렇게 잡고 있다면.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비해서 인간 수명의 연장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고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100세시대라는 말이 듣기 왠지 불편하고,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으로도 너무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생물학적으로 그 나이까지 너무 오래 아프면서 사는 게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지만 때로는 이 정도의 원치 않는 수명연장의 기술이 늘어났다면 최소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나, 준비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기본적으로 죽음이란걸 말조차 꺼내지 못할 것, 슬프고 무섭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조금은 바뀌었으면 한다.
죽음도 새 생명을 얻는 것만큼 큰 일이고, 예기치 못할 상황만 아니라면 온전한 한 개인의 삶을 잘 준비하고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목표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다시 보지 못한다는 부분만 빼면 어떨까. 누군가 때론 소풍같이, 때론 고통의 연속으로 삶을 오롯이 느꼈다면, 진지하게 임했다면.. 고생하셨다, 함께해서 좋았다, 드디어 편히 안식하시라며 내일 보자는 듯 내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게 진짜 인사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얼마 전 장기기증을 신청했었고, 외할머니의 치매를 겪으며 연명치료거부까지 등록했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 생각이 많아지긴 했다.
병원이나 돈이, 죽는 것이 무서워서 오래살고 싶다는 사람도, 그저 주어진 수명이나 운명을 받아들일 것 같지만 무섭긴 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장기기증을 신청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홀가분하고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엄마가 나는 뭔가 훨훨 날아갈 마음의 준비를 마쳐버린 모습처럼 느껴져서 자식으로서 슬프고 싫은 마음보다 아린 마음이지만 기특하고 눈부셔보이는 느낌마저 들더라.
이런 마음을 갖는 자식은 나쁜건가? 나도 아마 비슷한 생각이라 어느정도 동의했던 것 같지만, 난 아마 저렇게는 못하려나..
이런 생각을 하니 나이 마흔 앞이라는 건 그다지 와 닿지도, 별 것도 아니게 느껴지나보다. 삶의 의미와 죽음, 평생을 더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