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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Apr 24. 2023

글쓰기 전용 자아

나는 내 글에서 편집되었나


나는 내가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나의 의견은 맞는 것이며 (늘 반박할 논거가 있기에) 학생 때는 쉽게 어른들과는 말이 안 통해, 하면서도 힘이 없고 책임질 수도 없으니 따라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겉으로는 조금 조용한 사춘기를 보낸 내게 내 목소리를 내는 격정의 시간은 20대로 넘어가게 되었고, 몇 번의 퇴사를 거치자 사회의 부조리에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그것은 모두 내 잘못은 아니라 여겼다. 때로 그 안에서 사람들과 반목하고, 홧병을 고질병처럼 앓고, 혼자 참다참다 펑 터뜨려버리고는 그들의 말은 끝내 듣지 않거나, 나의 퇴사는 (속으로) 당신 때문이다 선언하고선 굳이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사람, 그래서 사과할 일은 그다지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걸 보고 들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30대는 조금 달라졌다. 아직도 안정이라기엔 뭐하지만 적어도 조급함은 약간 내려놓게 되는 여유가 생긴다면, 삶에 어느 순간 매사 그럴 수도 있지 라는 태도가 찾아온다면 그건 두 손을 들고 반겨야 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몇 년 일을 놓고 혼자 오랜 시간 지내다보니 스스로 느낀 작아진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사람에 시달린 스트레스가 덜해 넉넉해진 마음이었는지. 그 간의 심적 고통을 떠올리자니 새삼 내가 좀 별나기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은 방법도 있었을텐데.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나.


하지만 현대인들에겐 성찰할 시간이 그다지 없잖은가. 역시 다시 많은 사람을 마주한다면 그 중 누군가와의 사이에서 또 나만 억울한 상황은 싫겠거니. 저렇게 문득 힘들게 찾아와 준 심성 고운 생각이 내 본성인 것처럼 어떤 혹독한 상황에라도 나와줄 수 있는 것이 되려면 얼마나 더 수양을 해야 하는 것일까.


글을 쓸 때는 솔직해진다. 1분에도 몇십 번씩 거짓을 말한다는 우리. 그게 너무 피곤해서, 내게도 엄격한 내가 남에게도 때로 어쩔 수 없이, 앞에 직접 마주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말하기의 속성과는 달라서 - 그래서 나는 솔직한 글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쓰다가 심취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솔직한 내게 취해버려서 스스로를 수려하게 포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글을 쓰면서는 계속 수정되는 나, 그 와중에 진실이 아닌 것으로 편집되고 마는 지점이 있을 수도 있었다. 글을 쓰면서는 오타보다는, 그런 것을 노려보며 써야한다.


글에서 보이는 나는 솔직한 건 맞지만, 현실의 나와 뭔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을 편집, 포장, 아니면 그냥 평소 다 드러낼 수는 없는 조금 다른 나의 본심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글쓰기의 자아도 결국 쓰면서 찾아가야 하는걸까.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 진짜 나인가.


어쩌면 포장의 기술이 있다는 점에서 내 글이 어쨌거나 내 인격보다는 조금 더 나은 모양이다. (글이 좋은 쪽보단 인격이 문제..인 걸까요) 안에 있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더 낫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별로다.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수용도 꾸밈도 배척하고 싶지만 사회 안에서는 갈팡질팡 하는 나. 글에서와 현실의 나는 조금 분리해 두는 것이 좋은지, 정확히 합치시키는 것이 맞는지. 아직도 많은 공부가 필요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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