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인셋 Apr 23. 2023

나는 지금 편안한 무기력 상태

쏟아낸 뒤


새해가 되면서 블로그에 일기장처럼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고, 정해진 주제 없이 막 쓰다가 좀 더 깊은 생각을 말하고 싶은 면도 있어서 브런치에도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한 달 정도가 되었다. 매일 글쓰기를 목표로 했으니 이젠 웬만한 목마름은 채워진 셈이다.


작년 무렵부터 직장생활이 아니라도 가족 관계 속에서 마음 속에 쌓여가는 것들이 끓기 시작하자 혼자서 글을 써가기 시작했다. 분출할 곳이 있어야 했다. 아이를 낳은 후엔 그냥 곯아떨어지는 일이 많아 크게 밤새도록 끙끙 앓진 않았지만 직장 상사 욕보다 남에게 잘 말하지 못할 게 가족에 대한 불만이었다. 직장처럼 그만둘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 얘기한다고 나눠지는 문제도 아닌, 그것은 평생 떠안고 살아야 하는, 해결이란 게 없는 고통이다.


가장 웃긴 걸 말해볼까. 내가 초반에 쓴 브런치북 2권은 이전부터 거의 내용을 완성해 둔 것이었다. 내 마음을 조금 정리된 상태로 고이 올려두고 모르는 이도, 당사자에게도 보일 수 있는 상태가 되자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그것만으로 내 마음 속 앙금은 70프로쯤 사라졌다.


그걸 쓰며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 내 마음의 쩨쩨함과도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억울함을 늘어놓고 내 입장의 정당화나 합리화를 하고 싶어했던 것도 같다. 그러니 난 내 스스로에게 마이너스적인 통쾌함을 느끼며 혼자 그 간의 일을 쌤쌤으로 치고선 조금쯤 잊어버리기로 한 건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또 곧 수면 위로 떠오르겠지만. 글을 쓰는 건 이런거구나, 쓰면 쓸수록 글과 나의 다른 면모를 알아간다.


그 글들은 실은 관계 사이의 지극히 내 기준인 불평불만이라 사정 모르는 남에게 읽히기엔 부끄러운 것이다. 더 솔직하게는 읽어줬으면 하는 건 당사자 딱 한 명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부당한 것을 쓰진 않았다. 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할 것을 쓰진 않았다. (시작은 그렇지 못했지만 수십 번 쓰고 고치면서 차차 감정보다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들여다보게 되긴 했다.) 주변인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화가 나고 수치스럽다면 그 화살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거기 적힌 부당한 말과 행동을 향해야 한다는 확신도 생겼다.


그들에게 아픔을 주려고 쓴 글은 아니며 적어도 내가 그들을 불편해하는 만큼의 반의 반이라도 그들도 불편했으면 하는 정도의 못된 마음은 있다. 그 정도도 나쁜 거라면 난 기꺼이 이젠 좀 나쁜사람이 되고픈 의사가 있다. 지금은 쓸 당시보다 내겐 훨씬 다른 국면이고, 내 글이 무엇이 되어 돌아오든 나는 괜찮다. 그건 아무리 곱씹어봐도 내 본성을 벗어나지는 못할 번듯한 내 생각이고, 누가 뭐라든 내 마음속까지 어쩌지는 못할테니. 처음은 내가 이래도 되나, 나도 그 사람들 한정으로 좀 나쁘면 어때 하는 양극의 생각을 수도 없이 넘나들며 조금 초조했지만 점점 다른 글을 쓰며, 이 곳에서 위로받으며 안정되어갔다.




올해의 시작에 글쓰기와 함께 마음먹은 다른 하나는 '다 참지는 말자'였다. 사회적으로 그렇게 학습되어서 참는 것만이 좋은 줄 알았다. 긴 관계에는 참는 게 독이다. 정작 누가 강요하지도 않는 그것을 바꾸는  게 의외로 내 삶을 통째로 흔드는 일이다. 내 이름 석 자에 그려지는 것 중 그런 캐릭터는 그 동안 없던 것이었다. 사실 나를 뒤집는 건 내 삶의 방식. 나에겐 충분히 마음먹을 수도 있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관계를 너무 과하게 생각한다.


어제는 좀 일이 있었다. 아이가 떡을 너무 먹고싶어해서 남편이 차를 태워 나가 사온 떡 한 팩이 곰팡이 투성이었는데 남편도 아이도 모르고 먹었다. 놀라고 화도 났지만 탈이 나지 않는 것이 우선이어서 좀 지켜봤다. 다행히 먹은 양이 많진 않아서 별 다른 일은 없었고, 우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꽤 얘길 했다. 일적으로도 조금쯤 그런 컴플레인이란 걸 겪어보기도 한 우리는, 우리가 그러잔다고 환불만 되고 말겠냐, 별 일 없었으니 됐다, 관두자는 데 동의했다. 아니었다면 아마도 둘 중 누구든 진작 전화를 하고 쫓아갔어야 맞겠지.


풋, 순간 웃음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그 글들이 떠올랐다. 너와 나는 그런 인간이지. 이런 우리가 그런 극성스런 분들을 견디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투덜투덜 하는 면들이 있어도 네가 참고, 내가 참는 것을 보며 산다. 너무 작은, 그냥 지나가고 말 일인데 우리의 인생이 비춰진다.


직장을 그만두면 그 당시엔 살면서 가장 부당하다 여기던 것들은 좀 사라지고 만다. 사회적인 문제들이야 사소하게 많아도 내가 피켓을 들어올릴 만큼 내 삶에 치명적인 일이 흔하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 중 좀 오래 묵혀둔 것을 나는 지금 다 쏟아냈다. 마음이 편안하다. 조금은 내 속에 무엇인지도 모르게 펄펄 끓던 것을 꺼내어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이렇게 생긴거구나, 하고 조금 식혀 다시 집어넣었다. 이제 좀 남의 것을 보듯 할 수 있으려나. 이제야 진짜 쉼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편안한 무기력 상태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고를 어떻게 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