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아마 둘째는 없어
유전자, 그 쉬운 단어 하나가 내 몸을 구성하고 있다. 내 생김새, 신체적 특성, 미래의 질환, 약물에 대한 반응,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 내 삶의 모습, 나의 수명까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끝끝내 일어나고 마는 어떤 사고처럼 유전자는 내 시작을 그렇게 쥐고 있다.
나는 한 때 그런 것을 배웠고, 연구했다. 배웠어도 모르겠고, 보이도록 손에 쥐고 실험해 봤지만 여전히 고작 그런 게 나를 만들어내고 조작하고 있다는 게 신기한 건지 기분 나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 모르겠는 감정이 탐구심이라면, 난 거기에 10년 넘게 휘둘린 게 맞다. 아직도 더 휘둘릴 생각이 있다.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관련 분야들 사이를 떠돌다가 결혼 적령기쯤 되어 또래 동료들이 한창 결혼도, 출산도 앞두고 있던 때, 좀 친한 사이라면 한 번쯤 묻게 되는 그것. 아이를 갖고 싶은지, 낳는다면 몇을 낳고 싶은지.
인생사 바뀔 리 없는 질문일 것 같지만 그땐 그런 질문이 삐딱하게 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숨 쉬지 않고 진지하게 떠올려보고 대답했었다는 점에서 잠시 그땐 세상에 덜 찌들었었네-라는 생각이 들고 만다. (그땐 출산과 육아의 고통은 아직 겪지 않았을 때이니 체력과 노동과 나이의 측면은 포함되지 않은 대답이다.)
우리 집 형제가 셋이니까, 우리 땐 둘인 집이 많았고 외동도 많지는 않았는데, 셋이라서 난 크면서 많이 좋았거든. 둘도 싸우고 척지면 좀 부족해. 셋이 있어야 뭔가 조율이란 게 되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정도는 되어봐야 다양한 확률의 유전자 조합을 확인할 수 있지 않겠니. 낳을 때마다 다른 놈들이라니, 신기하잖아. 내 배 안 아프고 알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안 되고.. 내 자식 놈들의 phenotype이 어떻게 나올지 난 그런 게 좀 궁금해. 커서 뭐 될지도 좀 궁금하고..
정적. 할 말 잃음. 입을 가린다. '이런 도ㄹ..'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 정말 속내 다 얘기할 수 있는 사이라서 말한 건데.. 내 눈빛에서 인생의 초진지함을 느낀 이들이 이내 참았던 큰 웃음을 터뜨렸다. 심장도 이과인지 한 번 보자고. 업자들끼리 왜 이래.. 나만 그런 생각한다고?? 그랬나 보다. 내가 과했나 보다. 멘델의 완두콩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확인한다고.
부모님 때는 형제들이 많았다. 다들 언뜻 비슷비슷한 외모를 가졌고, 키, 체형, 얼굴, 손발의 모양새도 구분 지어보면 대체로 부계나 모계의 둘로 나뉘었고, 가끔 부모의 형질에서 찾지 못하면 조부모에게서는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성과 열성을 논하다가, 그건 열성인데 왜 열성이 우세인데! 하고 싸우고, 흔히들 말하는 공부머리가 어떻다느니, 신체의 어디가 약하고 성격이 누굴 닮았다는 건 당장, 굳이,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이는 부모를 닮고 유전이 된다는 점을 들어 늘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주로 나쁜 경우에. 어쩌겠나. 부모를 탓하고 싶어도 내 부모 또한 당신들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았을 뿐이고, 또한 내가 들을 원망이다.
진지하게 셋을 외쳤던 저 때의 생각이 지금 역시 바뀌지는 않았지만 현실적 선택은 하나여서, 아쉽게도 어쩌면 유전자 조합의 확인은 고작 형질 하나로 끝나게 되었다. 내 세상의 다른 조합의 가능성은 0, 우리의 세계 속에서 본 표현형은 이 아이 하나로 100이다. 그 100 속에 부디 아이가 살면서 감사하다고 느낄 일이 더 많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갈 우연의 기회들은 온전히 아이와, 우리들의 몫이다.
[일상의 질문과 농담은 이곳에서 가끔 '무거운 진실 속 가벼운 생물의 언어'로 변환되어,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은 말들로 이루어질 준전문적 수다가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