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란 위선
나는 이성적인 끌림, 직설적으로 말해 남자의 '외모'를 지독하게 따지는 부류다. 내 기준치를 웃도는, 내 취향의 외모가 아니면 애초에 시작조차 안 하는 내가, 도무지 마음에 단 1%도 들지 않는 외모의 남자와 꽤 오래 관계를 이어간 적이 있다. G다.
그의 직장과 내 집은 기가 막히게 가까웠고, 앞서 만난 F와 달리 그는 나에게 완전히 반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아주 명확하고 잔인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너 안 좋아해. 그리고 앞으로도 좋아할 일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 모멸찬 밀어냄에도 꿋꿋이 내 옆에 붙어 있었다. 내 말은 빈말이 아니라 100% 진심이었다. 외모도, 성격도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그를 이성으로 좋아할 일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그를 만났고, 그의 집도 드나들었다. 심지어 그가 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도 내 속엔 티끌만 한 질투조차 일지 않았다. 철저한 무감각. 그게 우리의 관계였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그 지독했던 P와의 이별 이후 집에 처음으로 들인 남자가 바로 G였다는 사실이다.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그는 내 집에서 잠도 잤다.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고, 앞으로도 사랑할 일 없는 남자를 내 가장 깊은 공간에 들이고 살을 맞댄 이 기괴한 마음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이었을까. 아마도 나를 절대 상처 입히지 못할, 철저히 무해하고 만만한 안전 기지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
하지만 결국 내가 생각 많은 남자를 치떨리게 혐오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제공자도 바로 이 착해 빠진 G였다.
사건은 그가 가족 행사로 본가에 내려갔을 때 터졌다. 기차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갔던 그는, 한껏 애틋하게 나에게 전화를 했다.
"네가 빨리 오라고 하면 일만 끝내고 바로 갈게. 갈까?"
자기는 원래 엄청 소심해서 누구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해 본 적도 없고, 싫다고 밀어내는 사람 옆에 이렇게 조용히 붙어있는 것도 처음이라며 작은 목소리로 순애보를 속삭이던 그였다. 그런데 그 달콤한 대사를 친 지 불과 10시간 남짓 지났을까. 나의 개차반 같은 술버릇에 기어이 학을 뗀 그가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블라블라… 우리가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 달 정도 만났고… 블라블라… 나 못 올라가겠어. 이건 진짜 일이 생겨서 그런 건데… 블라블라…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연락 남겨.]
그 구구절절한 빌드업 카톡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쳤다. 에휴, 그래. 네가 날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이 험한 세상에서 앞으로 뭘 감당하겠니. 하긴, 내가 술만 먹으면 좀 빡세긴 했지? 헌신적인 자신에게 취해있다가 뒤로는 혼자 수만 가지 짱구를 굴리다 결국 '예의'를 빙자한 장문의 변명으로 도망쳐버리는 그 얄팍한 다정함이 나는 너무나도 같잖았다.
그래도 나름의 덕담을 전하자면, 네가 그 나약한 멘탈로 미친 폭주 기관차를 두 달이나 감당했으니, 앞으로 어떠한 여자들은 족히 몇 년은 거뜬히 감당할 수 있을 거다. 네가 원하는 결혼을 빠른 시일 내에 이루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