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라 부르기도 아까운 잃음
오랫동안 연애를 안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에이, 연애만 안 했지 스쳐 지나간 사람은 많았겠지"라며 알은체를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스물넷까지 남자라는 생물과 제대로 상종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내게는 10년 지기 친구가 있었다. 그 애와 나는 단순히 친한 친구를 넘어 연인 이상의 정서적 유대를 나누는 사이였다. 이태원 참사 당시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 있던 그녀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도 나였을 정도니까.
물론 절대 성적인 끌림은 아니었지만, 연인의 가장 큰 덕목이라는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겁고,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사람"의 자리를 그녀가 너무나 완벽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나의 사회적 에너지는 지극히 한정적이었고, 그 친구와 감정을 교류하며 내 삶을 챙기기에도 벅차 남자를 만날 여력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진짜 연인들처럼 지독하게 싸우고, 몇 달을 안 보다가 또 자연스레 화해하며 그 징글징글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다 투잡을 하던 스물다섯, 처음으로 한 남자에게 온전히 시선이 꽂혔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내가 일하던 바에 찾아오던 단골이었다. 몇 달간 눈도장을 찍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함께 술을 마시며 자연스레 연락처를 교환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고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동했던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너무 서툴렀다. 의욕만 앞선 나머지 집착 아닌 집착을 부렸고, 내 안의 가장 후지대 후진 바닥을 그에게 여과 없이 까발려버렸다.
관계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나는 내 애인이나 다름없던 10년 지기 친구에게 SOS를 쳤다. 하지만 그 선택은 완벽한 자충수였다. 나는 내가 짝사랑하던 남자 앞에서도, 내 분신 같던 친구 앞에서도 가장 별로인 밑바닥만 전시한 꼴이 되었고, 그렇게 셋의 관계는 처참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내 10년 지기 친구와 내가 일하던 바의 그 남자가 꽤 오래, 진지하게 보는 사이로 발전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 구역이었던 일터에서, 내 눈에 처음 들어왔던 남자와 내 인생의 전부 같았던 10년 지기 친구가 눈이 맞았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땐 내 세계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줄 알았다. (그 멘탈 붕괴의 결과가 바로 C 챕터의 틴더남, 스키퍼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지한 관계로 굳어졌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을 즈음, 내 감상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뭐, 알게 뭐람."
왜냐고? 나는 그때 내 인생의 가장 거대한 지옥이자 천국이었던, 'P'와 열렬한 연애 초반부에 돌입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알았다. 아, 생각보다 인연이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구나. 내 인생에서 영원히 가장 소중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 떠나가면, 어느새 그 자리에 더 치명적이고 거대한 무언가가 떡하니 들어와 앉아 있다.
진짜 중요한 건 과거의 인연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 사실을 직시하는 거다. 내 곁에 새로운 진짜가 나타났는데도 떠나간 과거의 것에 집착해 봤자, 결국 양손에 아무것도 쥘 수 없다는 아주 명료하고 잔인한 진리.
돌이켜보면 내 세계를 통째로 빼앗겼다고 믿었던 그 배신극은, '상실'이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여 부르기조차 아까운, 아주 얄팍하고 가벼운 잃음에 불과했다. 그 공백은 다른 매우 커다란 것으로도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채워질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만을 남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