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혈흔과 비겁한 도망
어떤 인연이든 끝을 맺는 데는 언제나 지독한 후유증이 따른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평생 남으로 남는 사람, 아주 잠시 스쳤을 뿐인데 기어이 엉켜버리는 사람, 애초에 궤도조차 겹치지 않는 사람. 내 20대의 끝자락에는 그렇게 잠시 스쳐 얕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끝을 내든, 끝을 당하든 늘 크고 작은 후유증을 앓았다. 애초에 내가 100% 온전한 자의로 관계를 끊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맺은 인연을 내 손으로 놓는 것을 지독하게 힘들어하는 미련한 부류니까.
하지만 내 세계를 붕괴시켰던 그 거대한 연애가 끝난 후, 나는 변했다. 남들이 흔히 말하듯 누군가와 다시 깊어지는 것이 끔찍하게 두려워졌다. 그 지옥 같은 두려움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내 에너지를 깎아 먹는 감정 소모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지극히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 어쩌면 얄팍한 도파민을 좇아 두 명의 누군가를 동시에 곁에 두며 저울질하는 것 자체가,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게는 너무나 소모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비겁한 이유로, 나는 최근 하나의 인연을 끝냈다.
물론 나름의 합리화는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첫눈에 불타오르는 타입이 아니라서, 관계 초반에는 방어막을 치고 상대방의 태도를 집요하게 잰다. 이번에도 그의 태도가 내 기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그럴싸한 명분이 있었다. 만약 그가 나에게 한결같이 맹목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아마 나는 그 알량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두 명을 곁에 두는 미친 짓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연의 숨통을 끊어내고 나면 내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얕은 혈흔이 남는다. 하지만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지울 수 없는 흉터가 남기 전에 내가 먼저 도망쳐버리는 것. 진짜 깊은 곳까지 베어본 사람만이 반사적으로 취하게 되는, 바보 같고 소극적인 생존 본능이다.
온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얕은 혈흔이라도 묻히며 뒷걸음질 치는 이 비겁한 도망을, 감히 누가 함부로 욕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