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은 보여줘도, 마음은 보여줄 수 없는
그냥 이 정도의 마음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애써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누군가를 아주 얕은 근거리에서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멋있다고 느끼고, 심지어 조금 허술한 부분마저 귀엽다고 여길 수 있는 것. 그게 얼마나 도달하기 어려운 기적 같은 지점인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마구 안고 싶고, 함부로 만지고 싶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순간은 지독하게 한정적이다. 그런데도 속절없이 이런 마음을 품고 앓고 있다는 게, 꼭 10대 시절의 치기 어린 짝사랑 같아서 문득 실소가 터진다.
겹겹이 쓰고 있는 어른의 가면들을 다 벗어던지고 서로에게 투명하게 솔직해지고 싶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 우리가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나는 그 한정된 순간만을 집요하게 긁어모아 오래오래 기억하려 애쓴다. 그의 목덜미에 깊이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마시면서도, 당장 내일이면 우리는 절대 이럴 수 없는 사이라는 걸 뼈저리게,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내가 참 좋아했던 너의 그 짙은 연초 냄새가 이제는 나지 않아 아쉽다며,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리고 징징거릴 수 있는 것도 오직 그 찰나의 순간뿐이다.
"사실 네가 그때 해준 말이 계속 생각나서 하루 종일 일에 집중도 못 했어."
"멀쩡해 보이던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데."
그 무심한 대답에 기어이 서운해하고 마는 것. 그래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셈법 없이 내 감정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 웃으며 내 찌질한 속내를 꺼내놓을 수 있는 것도 오직 그때뿐이니까.
그 문을 나서기 전까지, 아니 그 후로도 영원히 나는 아닌 척을 해야만 한다. 네가 나의 일상에는 단 1밀리미터도 침범하지 못한 척, 태연하게 웃으며 완벽한 선을 그어야 하니까. 이 관계가 남긴 가장 기막힌 아이러니는 이거다. 결국 여전히 솔직하지 못한 내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그 은밀한 지점까지 가서도 너에게 내 진짜 감정만큼은 대범하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것.
너에게 스스럼없이 내 맨몸은 다 보여주면서, 내 진짜 마음은 끝끝내 보여주지 못한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