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자체가 목적이 될 때
누군가를 향해 참 애틋한 감정이 피어오르면 필연적으로 아쉬움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아쉬움은, 나라는 인간을 얼마나 한없이 취약하게 만들어 버리는가.
그가 더 이상 내게 어떤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거나 특정한 필요를 채워주는 타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내게 목적이 되어버렸을 때. 내 삶에 기어이 어떤 분명한 '이유'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을 때. 애써 억눌러봐도 서운한 마음은 자꾸만 고개를 들고, 그 볼품없고 추레한 감정은 결국 어떻게든 상대의 눈앞에 그 찌질한 실체를 드러내고야 만다. 그저 조금 애틋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무해한 단어로 포장해서 부를 순 없는 걸까.
애초에 아무런 기대도 해선 안 되는 관계였다. 절대로 헛된 기대 따위는 품지 않겠다고 오만하게 자부했건만. 세상의 날카로운 것들, 아니, 내가 지레 날카롭다고 정의해 버린 것들이 다가오면, 나는 여지없이 그 앞에서는 푹 하고 허물어져 버린다.
기대고 싶다.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지는 않다고 쿨한 척 선을 그어놓고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내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이 마음. 이걸 어떻게 '아무 마음도 아니'라고 태연하게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게 애틋함일까. 적어도 '사랑'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이런 싸구려 감정에 감히 사랑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붙여버리면, 내가 지금껏 온몸을 던져 해왔던 내 진짜 사랑들이 전부 부정당하는 것만 같으니까. 필연적으로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는 얄팍한 관계는 결코 사랑이 아니다. 무엇보다, 상대에게 이미 지켜야 할 다른 가장 소중한 것이 명백히 존재하는 관계를 감히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알량하고 뻔뻔한 감정 앞에서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서운해하고 삐져버리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는 걸까.
대체, 어떤 얄궂은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