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어디까지 해봤니? : 2

※ 현실 연인의 이별로 피로감이 높을 수 있습니다.

by 유은


우리의 싸움은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최근 일주일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했지만,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그날은 우리에게 전환점이 될 거라 믿었던 날이었다. 잡생각과 불안이 뒤엉켰지만, 너라는 사람이 한 발자국만 더 깊게 들어오면 또 말갛게 다 잊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넌 내가 이러지 않았으면, 날 만나는 평생, 몇 년 동안 매일 이랬을 거야."


너도 알았던 게 아닐까. 내가 널 힘들게 하지만 절대 떠나지 못할 사람이라는 걸. 내가 누구보다 널 사랑한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너의 말대로라면, 나의 노력은 터무니없는 착각이었고, 너에게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래, 나는 단지 불안을 표현할 뿐, 온몸으로 안아달라고 외치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너는 지쳤다고 했다. 더는 의지가 없다고 했다. 줄 게 없다고 했다. 손이 떨리고, 구토가 나왔다. 퇴근길 내내 이어진 다툼. 집에 도착하니 벌어진 이별. 나는 곧장 택시를 타고 네 집으로 향했다. 가는 한 시간 동안 뭐라도 쓰고 싶었지만, 공책을 찢기엔 싫었다. 예전에 산 작은 고양이 결혼식 카드를 챙겼다.


몇 번 울린 초인종의 큰 소리,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 결국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너는 없었다. 밥 먹고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왔구나. 불도 켜지 않고 그대로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들어왔다. 전화 중인 듯했다. 나는 힘이 다 빠진 너에게 편지를 건넸다.


"뭐라도 하나 쓰고 싶었어. 편지지가 그거밖에 없어서, 흔들리는 택시 안에서 썼어. 공책에 적기엔 좀 아닌 것 같아서."


고양이 결혼식 일러스트를 보며 웃었던 날이 생각났다. 물론 그날도 싸웠었다.

미안해. 실낱같은 희망 하나 잡고 왔어. 이 순간에도 너무 보고 싶어. 내가 바뀔게.. 블라블라. 몇 천번이고 반복했던 말들.


"그래, 똑같은 내용이네. 내가 이 말 하나 믿고 지금 여기까지 왔잖아. 반복이잖아. 이제 나가줘. 나 좀 쉬어야겠다."


말투는 차분했고,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아, 심장은 이렇게 찢기는구나. 1시간 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처참할 수 있었나. 내가 망가뜨린 걸까. 아닌데, 우리가 다시 회복됐으면 했던 건데. 장난스러운 확신이었더라도 충분했을 텐데. 마지막이 오면 내 감정은 아무 의미가 없구나. 결국 네가 놓으면 끝나는 게 우리였구나. 넌 참는 사람이고, 나는 잘못된 사람이니까.


“보고 싶어서 왔어. 나는 네가 정말 보고 싶어서, 달려오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드는데. 너는 나한테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 있어? 난 그런 결핍이 있었어, 사랑받고 싶었어."


“내가 너무 불쌍해서 안 되겠다. 나 요즘 잠도 못 자고 너무 아파. 말한 대로, 평생 혼자 살게. 후회도 내 몫이니, 그만하자.”


감정으로 호소하는 내게, 너의 눈빛은 냉소적으로 변했다. 조금만 더 있게 해 달라는 내게, 넌 말했다.


“또 시작이네. 넌 항상 말을 바꿔. 내가 지금 얼마나 간절히 가달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진짜 죽을 것 같아. 넌 너밖에 몰라. 일 년 반을 만났는데, 넌 나라는 사람을 몰라.”


극단적 표현만 남았던 너에게 나는 산산조각 났고, 결국 짐을 챙겨 나왔다. 이 모든 상황은 이별 통보를 듣고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들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그동안 쌓였던 불안과 고통이 단 한순간에 무너졌다. 집에서 미친 듯이 울고, 이별 영상들을 보고, 심리학 강의를 틀어놓고,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전자담배만 피웠다. 죽겠다 싶어 요가원에 갔다. 끝나고 차를 마셨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이 터져 나왔다. 다시 택시를 타고 너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에어팟이 떨어졌다. 택시를 세워 주웠다. 지금 생각하면, 가지 말라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가기 전 두통의 전화에도 무응답이던 너였다. 문을 열어달라는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정말 마지막이구나. 생각하고 문을 열었다.


쓰면서도 내가 미친 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였고,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너는 형과 통화 중이었고,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런 내가 불편했는지, 방에서 나와 소파에 앉으라고 고갯짓 했다. 통화가 끝난 후의 말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카톡이나 문자를 먼저 하는 게 아니라, 전화 두 통 하고 이렇게 집에 오는 게 뭐냐. 내가 집에 없었으면 어쩌려고, 또 왜 없냐고 따지려고? 무작정 오면 내가 잡힐 줄 알았어? 20대 초반도 아니고."


결국 나는 가장 치졸해질 수 있는 문장까지도 써버렸다.

“이제… 나 사랑 안 해?”


“그래, 사랑 안 해.”

내 표정을 살피며 덧붙였다.

“봐. 넌 또 이 말에만 꽂힐 거야.”


회사에 가봐야 한다며 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회사 밑에서, 차 안에서 기다리면 안 돼? 이야기 좀 더 하면 안 될까..”


그게 너의 트라우마였다. 핸들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다신 안 그래. 다신 누구를 만나도, 기다리게 하고, 마음 불편하게 하는 그런 거 다신 반복 안해.”


너는 내가 약자인 포지션이 질려 죽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너의 잘못은 순간의 실수로 정리되지만, 내 잘못은 나라는 사람 자체의 문제로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엉망이었을까. 일단은, 내가 잘못된 게 맞는 것 같다. 너의 '누구를 만나도'라는 말이 꽂혔으니. 결국 집에 가기로 했고, 조금 차분해진 상태에서 물었다.


“마지막 얘기만 들을 수 없을까.”

“연락할게.”

“안 할 거잖아. 어떻게 기약 없이 그냥 기다려... 날짜만이라도 대충 정해줘. 기다릴게.”

“...그것마저 너만 생각하는 거야. 끝까지 이기적이다. 하.. 그래. 일요일 밤에 전화할게.”


냉정한 말에 처음으로 안심이라는 감정이 스쳤다. 그래도 정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카톡이나 문자 하면 받아줄 거야?”

“받아줄게. 근데 우리 헤어졌잖아. 답하는 건 내 마음 아니야?”


나는 차에서 내렸고, 집에 가는 지하철을 탔다.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이었다. 곧 너의 전화가 왔다.


“집에 잘 들어가.”


우리의 마지막 통화였다. 너는 다음날 더 자겠다는 카톡만 남기고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집에 있다가 죽을 것 같은 위협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말했다.


“너, 엄청 위축되어 있어. 2년 전과는 딴사람 같아.”


술에서 깬 아침, 네가 우리 집에 오는 망각의 꿈을 꿨다. 일요일, 네 전화를 기다리며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끝났다. 이별 후, 나는 핸드폰과 연락처를 바꿨고, 카톡 계정도 탈퇴했다. 청약 결과는, 이별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왔다. 그날까지 너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넌 날 차단했었다. 정말 극한에 몰렸을 때 그 사람의 진짜가 나온다. 내가 너를 얼마나 몰아넣고 힘들게 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집어치우자. 죄책감에 병나서 죽겠다. 우리는 상호협의한 연인이었다. 너는 나의 서운함과 요구가 버거웠고, 더 이상의 의지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 단 한순간에 이별을 고했다. 너는 마지막 순간, 진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고,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품었던 의문을 조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조금은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게 네가 말했던, “이러는 게 너에게도 좋을 거야"의 근거였을까.

진심으로 고맙다.


“넌 나한테 10을 주고 100을 가져가잖아."


마지막 부탁이 있다면, 내가 너에게 10을 주고 100을 가져갔다고만 확신하지 않았으면 한다. 날 그런 사람으로만 정의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 너에게 10을 가져가고, 1000을 주었다고 믿으며, 그 안에서 받은 상처도 분명 있었으니까. 그게 생각보다 많이 아팠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도 있다. 타인의 이별은, 누군가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지금은, 그 누군가가 나 자신이다.


“잊지 못할 줄 몰랐다. 실은 잊지 못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줄은 몰랐던 거다.”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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