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 연인의 싸움으로 피로감이 높을 수 있습니다.
이별 일주일 전, 너는 친구 결혼식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한 달 전에 했던 이야기였다.
“몰랐는데, 저번에 말했던 광주 결혼식, 이번 주 토요일이었어.”
“아, 전라도야? 경기도야?”
그게 시작이었다. 너는 한숨을 쉬며, 내가 너무도 잘 아는 말투로 말했다.
“이번이 몇 번째 똑같은 질문인 줄 알아?”
“아, 밑에까지 가야 하는데, 갈 거야? 괜찮겠어?”
“유은, 나는 네가 그런 말 할 때마다 작아져. 기분도 안 좋아. 내가 굳이 말할 정도면 꽤 가까운 사람 아니겠어? 근데 넌 항상 네 기준으로 판단해서 ‘거길 왜 가?’ 식으로 말해. 그게 얼마나 상처되는지 알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 말은 언제나 정확하고 섬세했다. 너는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감정의 이음새를 늘 먼저 짚었다. 처음엔 그 간극이 혼란스러웠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저 물어본 것뿐이라고 했지만, 너는 그 안에서 반복되는 무관심을 느꼈다. 그건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었다. 말투, 반응, 단어 하나하나가 너에게는 ‘내 감정을 가볍게 여긴다’는 신호였던 거다.
“이렇게 얘기 꺼내는 것도 눈치 보는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아?”
그 말속에 담긴 자조가 너무 진해서, 말문이 막혔다. 우리 관계에서 너무 익숙한 패턴이었다. 나는 자주 잊는 편이었고, 너는 그걸 관계에 대한 무성의함으로 받아들였다. 너는 쌓이지 않는 공허함의 반복에 지쳐 있었고, 나는 네 한숨과 다그침이 숨 막혔다. 결국 우리는 또 다투었고, 너는 근무에 들어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찝찝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기분. 혼자인 느낌. 사소하지만 깊은, 그런 상처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었다.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너는 밥은 먹었냐 묻는 의무적인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는 읽지 않았다. 재택근무로 하루를 버티며 마음을 추슬렀지만 너의 퇴근 시간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네 연락에 답하지 않으면서도 늘 네 퇴근 시간을 혼자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툭툭 장난치듯 먼저 연락 오던 너를 기다리며, 괜히 퉁명스럽게 굴었다. 악순환이었다. 기다리다 먼저 전화를 걸자, 너는 형을 데리러 간다고 말했다.
“퇴근하자마자 일 전화가 너무 많아서 연락 못 했어. 바로 하려던 참이었어.”
늘 똑같은 말. 내가 더 빨리 하려던 참이었는데. 1년 반을 만났는데도, 이렇게 멀고 불확실한 거리감이라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다만 우리 안에 쌓인 불만과 불안이 서로를 계속 할퀴고 있었을 뿐이다. 사람의 불안이라는 감정은 끝까지 밀고 들어온다. 그리고 결국, 내 서운함은 또 다른 말다툼의 시작이 되었다. 사랑의 크기를 확인받고 싶었던 나는 점점 더 극단적인 표현으로 관계를 망치고 있었다. 너에게 남은 건 한숨과 내 잘못에 대한 나열뿐이었다. 나는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마지막 발악을 했다.
“시간 좀 갖자.”
그리고 너는, 카톡을 읽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먼저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서로 윽박지르며 다투었다. 너는 전화를 끊었고, 프로필 사진을 내렸다. 나도 너를 차단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당연하게도 또다시 너를 찾았다.
“힘들어. 오빠, 전화 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피로감이 다시 몰려온다. 그래도, 너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네 말들이 남긴 상처는 금세 아무는 듯했다. 이렇게도 쉽게 아무는 내가 넌 얼마나 버거웠을까. 우리는 그날, 금요일 저녁에 만났다. 그건 화해라기보다, 감정의 유예였다.
“결혼식장 같이 가자. 너에게 기분 좋은 일을 같이 하고 싶어.”
우리는 함께 광주로 향했다. 하지만 미뤄뒀던 감정은 금세 무너졌다. 풀리지 않는 근본, 변하지 않는 태도. 우리는 결국, 똑바로 쌓일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광주 내려간 김에, 사촌 만나는 거 어떻게 생각해?”
혹시나 꺼낼까 걱정했던 질문이었다. 이미 전에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고, 그 일로 싸운 적도 있었기에. 단 하루, 1박 2일의 일정이었다. 우리에겐 환기가 필요했던, 서로에게 몰입할 시간이 절실할 때였다. 한 달 전에도 너의 가족 결혼식을 갔다 왔던 터라 적어도 저녁만큼은 타지에서 오롯이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말하지 않아도, 너도 그럴 거라 믿었었다. 나는 실망했고, 방어적으로 반응했다. 너는 내 말투가 공격적이라고 말했다. 감정의 파편이 또 오갔다. 놀랍지도 않았다. 너무나 익숙한 방식이었다. 어색한 공기 속 3시간 동안 너는 운전을 했고, 나는 네 대학 동기들 앞에 설 내 모습을 만들고 있었다. 너의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 가는 게 나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안은 강박처럼 번졌고, 나는 외모를 꾸미는 일로 그 감정을 눌렀다. 너는 그런 내 모습이 못마땅했다. 눈빛 하나가 또 나를 상하게 했다. 우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소소한 문제에서 시작된 다툼은 금세 깊은 균열이 되었고, 이해보다는 오해와 방어로 가득 찼다. 그리고 결국, 그 방식은 서로를 갉아먹는 칼이 되었다. 그렇게 사랑했고, 그렇게 소진됐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아낀다는 건,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증명되어야 할까. 우리는 정말, 서로를 아끼고 있었던 걸까.
"너 마음이 궁금해서, 일요일에 집에 있었을 때 노트 봤어. 거기 마지막 글 봐. 난 그래도 호구처럼 너랑 끝까지 가려고 했어. 근데 넌, 어차피 나랑 끝까지 갈 생각 없었잖아."
일주일 뒤, 1년 반의 시간이 끝났다. 감정적인 통화가 길어졌고 너는 결국 그렇게 터트렸다. 이별을 쏟아내며 내뱉은 마무리였다. 전화를 끊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지만, 너는 듣지 않았다. 노트를 펼쳤다. 아, 1년 전이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서로의 바닥을 마주한, 첫날이었다. 집에서부터 싸운 채 차에 올랐고, 고작 종로에서 용산까지의 거리에서 폭발했다. 내려달라는 내 말에 넌 차를 세웠고,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오자마자 오열하며 눈에 보이는 빨간 볼펜을 집어 들고 너와의 이별을 노트 몇 장에 빽빽이 써 내려갔다. 작은 노트의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번에 내가 오빠를 잡는 건, 철저히 나를 위해서다. 나는 이걸 잊지 않고 언젠가 냉정하게 끝낼 거다.”
까맣게 잊고 있던 서늘한 문장이었다. 그때의 나는 자존심도 내려놓지 못했고, 우리의 균열을 인정할 용기도 없었다. 그 문장은 이별의 결심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한 분노와 불안을 눌러쓴 고백이었다. 처음으로 버려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모순적이게도 네 옆에 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던 시작이었다. 너의 집으로 달려가 처절하게 매달리기 전, 마지막 남은 나의 티끌이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자기 위로였다. 내가 매달릴 때마다 반복됐던 네 대답, 혹시 기억할까.
"네가 오늘 오지 않았다면, 결국 내가 먼저 너의 집으로 갔을 거야. 넌 항상 나보다 빨라."
결국엔 네가 날 잡을 거라고, 너는 나에게 확신을 줬었다. 내가 너무 빨라서 항상 앞에 가 있다고,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말. 진심이었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네 옆에서 어떻게 안정적일 수 있었겠어. 너를 붙잡던 순간들이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처였다는 건 아니다. 사실 홧김에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했던 것도, 너의 바닥을 끌어올린 것도 나였고 나는 네 행동에 너무 쉽게 불안해졌고, 그게 널 지치게 만들었겠지. 그리고 1년이 지난 시점, 너는 그 글을 봤다. 언제 쓴 글인지, 너는 알고 있었을 거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도. 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니까. 그러면서, 제일 모르니까. 그때, 나도 말하고 싶었다. 너도 다이어리에 이별이 맞는 것 같다고 써놨잖아. 이별의 책임을 나에게 어디까지 주려고 했던 걸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기를 바랐는데. 아직까지도 네가 남겨둔 내 잘못의 흔적이 날 갉아먹는다. 끝없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하는 네가 원망스러웠다. 물론, 나도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의 이별 이유가 그 글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 무수히 많은 조각들 중 하나였다는 것. 하지만 냉정하게 떠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였다. 그게, 우리의 결말이다. 도대체 난 왜, 너를 만나 이렇게까지 감당하지도 못할 사랑에 빠져버렸던 걸까.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늪에서 언제까지 허우적거려야 하는 걸까.
“고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쓸쓸함은 사랑을 약하게 만든다. 거기에 젊음이 더해지면 모든 것이 위태로워진다.”
― 사랑 후에 오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