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조절하기로 결정한

모든 S들에게.

by 유은


S는 곧 서른을 앞두고 있는 여자다.


예쁜 외모. 평범한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딸. 화끈한 성격. 적당히 안정적인 직업. 늘 인기도 많았고, 연애도 자주 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아마 처음일 공백의 1년. 또래 남자들만 만나다가 처음으로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났을 때부터 걱정은 좀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이후로 그녀는 아직, 아무런 새 연애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그 남자는 외적으로 괜찮았고, 다정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엔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특별할 것 없는 남자였다.


결혼을 하고 싶어 하던 그녀는 소개팅, 헌팅, 모임에서 짧게 짧게 만난 남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애써봤다. 그러다 어느 날, 동네의 허름한 이자카야에서 그녀가 말하기를.


“안 되겠더라. 그렇다고 그 남자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건 아니야. 이제는 내가 먼저 누굴 좋아해 보려고.

지나가다가 진짜 내 스타일이면, 외모만 보고 번호 물어볼 거야. 쪽팔린 거? 아무 의미 없어. 거절당해도, 그걸 아는 건 그 사람과 나뿐이잖아. 그리고 솔직히 그 사람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중에 봐도 기억도 못 할 거야. 번호 준다면 고맙고, 아니면 말고. 그냥 얼굴만 보고 마음이 동하면, 내가 먼저 다가가 보는 거지.


그게 훨씬 덜 기대하게 돼. 덜 실망하게 되고.


이젠 누가 다가오는 걸 억지로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을 거야. 내가 먼저 100에서 0으로 서서히 소멸시켜 가 보려고. 괜찮다 싶으면 시작하되, 마음이 아니면 조용히 멈추는 쪽으로. 0에서 100으로 혼자 달리다가, 결국 나 혼자 100의 상태로 남는 건 진짜, 존나 구질구질하더라. 다신 안 하려고.”


잠시 멈췄던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정말 사랑하고 헤어지면 후회가 없다? 그 말, 아닌 것 같아. 정말 좋아하다가, 혼자 남겨져서 헤어지는 게 제일 비참한거야. 이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 미화될 수 있을까? 전혀.


그래서 이제는 누굴 미치도록 좋아했다가, 결국 헤어지는 그런 사랑은 안 하고 싶어. 이제는 아닌 것 같으면 휙 돌아설 수 있는 마음으로 모든 관계에 그렇게 임할 거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말 평탄하게 잘 맞는 사람이 오겠지. 죽고 살기로 사랑한다고 해놓고, 끝내 헤어지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짜치잖아. 지겨워.”




나는 S의 마음을 안다.


박애주의자 같던 그녀가 이제는 사랑을 ‘조절’하기로 한 마음을.


그건 정말 많이 아파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아주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말조차 쉽게 꺼낼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다짐이었다.


그녀는 이제, 누구보다 조용하고 단단하게 자신을 지키기로 했다.


수많은 인연 중엔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놓고 결국엔 떠나버리는 사람도 있다는 걸. 떠났는데도, 그 자리에 선명하게 남는 사람. 존재감 하나로, 끝끝내 완전히 떠나가지 못한 사람.


S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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