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요구 사이
사람을 고쳐 쓴다는 것에 대하여
‘고친다’는 말은 원래는 사물에 쓰는 말이다.
고장 났을 때, 불편함이 느껴질 때, 다시 편안해지도록 다듬고, 맞추고, 메워주는 일.
그런데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이 되는 걸까.
사람이 사물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고쳐달라라고 말하는 것.
그건, 모두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자격이 아니다.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라면, 도덕과 윤리의 선을 벗어났다면 그건 고쳐달라기보다 떠나는 게 맞다.
그래도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싶다면,
그 마음을 ‘고쳐줘’라는 말로 빌려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을것이며
그 과정에서 남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도 않는다.
큰 문제는,
그저 나와 맞지 않는다는, 내 안의 트리거를 건드린다는 이유만으로 고쳐줬으면 한다는 것.
어쩌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라기보단 내가 손해 보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상대가 바꿔주면 편해질 것 같아서.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 순간부터 관계는 조정과 거래가 되며 결국엔 사랑이 아닌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말해도 된다. 가까운 사이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건 건강한 일이다.
“이건 내게 불편한 부분이야.”
그 사람도 널 아낀다면 분명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해라.
끝까지 강요하지는 마라.
그 순간부터 요구만 남게 되고 통제가 되며, 결국엔 폭력이 된다. 정당한 요구라는 합리화 아래, 타인의 고유함을 지우려 들지 마라.
어떤 결은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유일한 무늬다. 그러니 스탠스를 정해야 한다. 덮을 수 있는가, 없는가. 콧방귀 뀌듯 웃어넘길 수 있다면 덮고 함께 가도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너의 본능적 트리거이거나, 그만큼 사랑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사람 자체가 너에겐 트리거일 수도 있다.
그 존재 자체가 계속해서 너의 감정을 흔들고, 자존감을 건드리고,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게 만든다면
그건 상대를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 그 사람이 통째로 상처처럼 느껴지기 전에, 놓아주는 게 맞다.
사람은 사물이 아니다. 당신이 완벽하지 않듯, 당신의 결 역시 누군가에겐 불편함일 수 있다.
그 사람의 모난 결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다정한 그 사람의 일부일 수 있다.
결국엔 고쳐 써야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결을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고쳐 쓰려하지 마라.
참으면서 억지로 이어가려 하지 마라.
그 결을 감당할 수 있는지, 먼저 자신의 결핍에게 물어보는 것이 시작이다.
사실 주절주절 좋게 말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좆같다 싶으면 처음부터 떠나라. 사람 정신병 만들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