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가 아닌 경험
몇 번을 다짐해도 내 고유한 결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지. 하지만 지금의 회의감은 너 때문이 아니라, 내가 꿈꾸던 미래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끄적였던 적이 있다. 지금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을 가질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또 다른 무언가로 나타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경험하기도 전에 하나의 상실만으로 모든 걸 단정하기엔, 나는 아직 너무 어리다. 그래서 기다려보려 한다. 내가 느낀 가장 큰 미래를 한 번 잃었다고 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앞으로 내 삶의 목표가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걸 발견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그럴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답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살아 있어야 한다. 살아 있어야만 할 것 같다. 하루가 그저 흘러가는 듯 보여도,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회의적인 나조차도.
이건 단순한 철없음이 아니다. 아무 이유 없이 죽고 싶다고 내뱉는 말과는 다르다. 나는 분명 삶의 목적과 행복을 가져봤었고, 그 유일함이 사라진 지금은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다. 살아낼 수 있다. 목적을 잃은 사람에게 ‘그냥 멀쩡한 듯 살아라’라고 말하는 건 잔인한 폭력이다.
그래서 고민한다. 그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 안을 아무리 뒤져도 삶의 의미를 아직 모르겠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래, 일에서 오는 성취도 있었고, 혼자 사색하며 느끼는 기쁨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언젠가 지루한 반복으로만 남게 되면 어쩌나. 진짜 목적이 사라져 마음이 텅 비게 되면 어쩌나. 그땐 무엇으로 날 버티게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내가 살아보려 하는 건, 결국 내 삶의 진짜 이유를 찾고 싶어서다. 나는 한때 분명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 행복을 평생 모르고 살아갈 수는 없다. 평생 비어 있는 삶은 원치 않는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폭력처럼 느껴진다. 난 진짜 의미를 찾고 싶다. 내가 그토록 원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설령 완전히 얻지는 못하더라도, 겪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렇게라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조금씩 즐겁게 영위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