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상실 = 성장
“우리는 만난 시기가 잘못됐어. 조금만 더 뒤에 만났어야 했는데.”
“네가 원하는 것만큼 특별한 사람이 못 돼줄 것 같아.”
최근 가장 오래 남은 두 문장이다. 사랑 고백을 하고 차이며 들은 말은 아니다. 그 반대였다. 나에게 일방적인 호감을 보였던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내 상황과 마음을 잔인할 만큼 솔직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옆에 있겠다고 머물러 준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전혀 이성적인 긴장감이 없었다. 외적으로는 훌륭했지만, 내가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다른 한 사람은 내가 끌린 요소들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남자로서는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끔은 ‘내가 눈이 너무 높은 걸까’ 싶다.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산을 짊어진 채 만남을 이어간다는 건, 결국 내게도 피곤한 일이니까.
그럼에도 어떤 말들은 나를 움직인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공허를 메우기 위해 누군가를 붙잡지는 않는다. 이제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며 버틴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아내던 시기는 끝났고, 덕분에 내 스물일곱의 여름은 뜨겁고 힘들었지만, 동시에 꽤 흥미로웠다.
이번 주에도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그 사람 없이 떠난 두 번째 여행이다. 혼자 바에 간다. 예전 같으면 너의 얘기를 꺼냈겠지만, 이제는 하지 않는다. 물론 내 이야기를 할 때 너를 완전히 지울 순 없다. 다만 ‘전남친’ 정도로만 소개될 뿐이다. 다행이다. 처음 만난 바텐더가 “많이 성장하신 것 같아요, 앞으로 나갈 일만 남은 것 같은데요. ”라고 말했을 땐, 나도 모르게 뿌듯했다.
혼자는 이제 익숙하다. 루틴 덕분에 외롭지도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은 더 자주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왜 시간은 괜찮아짐으로 흐르지 않고, 오히려 역행하는 걸까. 마치 꿈속에 사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도 분명 현실을 살아내고 있으니, 나쁘지는 않다.
요즘 내 시간은 고독과 상실을 기준으로 흐른다. 하지만 그것이 꼭 후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 고독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또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아마 할 말이 너무 많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이렇게 시니컬한 척하는 미련한 사랑주의자에서 드디어 졸업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사랑과 이별에 관한 책을 꾸준히 읽고, 너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앞으로의 사랑에 너의 기준을 덧씌우지 않으려 한다. 너는 너고, 새로운 사람은 그 사람일 테니까. 그를 만나게 된다면 꼭 상냥하게 대하고 싶다. 물론 또 술에 취해 실망을 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무게가 그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나의 다른 부분을 통해 더 채워질 수 있는 사람이기를.
스물일곱의 여름은 내게 특별했다. 늘 곁에 있던 존재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혼자에 익숙했던 나조차 다시 혼자가 되기까지 많은 품을 들여야 했다. 그 사이 잦은 문제도 있었고 꽤 무모하기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뻥 뚫린 부재를 붙잡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진심을 보여준 사람들 덕분에 꽤나 즐겁게 버틸 수 있었다. 끝을 상냥하게 맺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서도 이 여름이 조금은 재밌었길 바란다.
나는 그들 덕분에 성장했다. 그래서 이제는 공허한 만남이 아닌 사랑과 닮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기적인 마음일지라도, 여전히 그렇게 소망한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게 된다면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 사람에게도, 떠나준 너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