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지 않는, 질리는 인간

불행하지 않음의 기준

by 유은


인생의 목표를 생각해 봤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흔들리는 걸까.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걸까, 아니면 단순히 행복하고 싶은 걸까.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아, 이제 부정할 수 없다. 그렇게 사랑 타령을 싫어하고 회의적이었던 나였지만, 결국 나는 사랑 속에서 가장 행복했다. 그 이상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일까.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분명 아닌데, 나에게 ‘정’이란 게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나도 마음의 무게가 엇갈린다면, 나는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까. 늙어서 혼자 사는 게 행복할까. 그땐 사랑이 아닌 형태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만족할 수 있을까. 행복이란 단어를 계속 쓰지만, 내가 정의하는 행복은 단순히 불행하지 않은 상태다. 지금 당장 무너지지 않는 것.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아낼 자신이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 없이도, 불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경험주의자다. 경험이 인간을 만들고, 고유의 색을 만든다. 그 사람의 정확한 호불호를 알게 하고, 자신의 선호를 확립하게 한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 자기 색깔을 명확히 아는 건 재능이고, 그 재능은 경험이 만든다. 나도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를 때 비싼 기회비용을 치르며 내 색을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한 회사에 묶여 바쁘게 사는 건 싫다. 고정 수입은 필요하지만, 그 안에서 스트레스받고 싶지는 않다. 평일에 널널하게 일하고, 주말에는 다른 일을 하는 방식이 최적이다. 바쁘면서도 바쁘지 않은 느낌. 그런데 사랑이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나의 일을 최대한 단순히 유지하면서, 그 사람을 보고 싶어진다. 이것이 유치한 사랑일까, 어린 마음일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미래를 늘 구체적으로 그려왔다. 사랑한다면 함께 사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다. 다만 그 마음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만나자마자 사랑하고 결혼하자, 그런 건 아니다. 난 결혼이라는 제도에 회의적이다. 내가 정말 사랑한다는 건, ‘난 이제 너에게 질리지 않아’라는 무서운 결심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넌 이제 나에게 질릴 수도 있어. 이번엔 제발 질리지 말아 주면 안 될까’ 하고 부탁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무너져 내릴 듯한 감정을 버티기 위해 일을 붙든다. 오늘도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다. 몇 번의 고비를 지나며 웃어넘겼다.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는 나 또한 충분히 당당해 보일 수 있겠지.


나는 왜 한 번 사랑하면 끝까지 질리지 않을까. 동시에 왜 나는 그 사람을 끝까지 질리게 만들까. 누군가는 사랑하다 식어버리고, 감정이 남아도 이성으로 끊어낸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한다. 감정이 끝끝내 이성을 묶어두고, 이성이 감정을 이기지 못한다. 결국 나는 오래 사랑하지 못하면서, 질려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질리게 하는 것도 나다.


이제는 다시 일로 돌아가려 한다. 글도 많이 쓰고, 돈도 벌겠다. 뭘 위해서일까. 글쎄,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차라리 허튼 생각할 시간에 돈을 벌자. 감정에 빠져 있던 동안 나는 늘 소모되고 공허했다. 그만두자. 네 달이면 충분히 했다. 돈도 충분히 썼다. 더는 부족하지 않다. 힘 빼고 살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지만, 지금 힘을 빼면 또 말도 안 되는 시간 낭비만 몇 달 더 하겠지. 그땐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미리 막는 것이다.


돈을 벌자. 글을 쓰자. 그리고 언젠가 마음이 안정되면, 그때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말자. 억지로 사랑하려 하지 말자. 타이밍이 아니라면 굳이 만들 필요도 없다. 사랑은 억지가 아니라 흐름이다. 지금은 질리지 않는 사랑보다, 질리지 않는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할 때다. 이러다간, 정말 나까지 나에게 질려버릴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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