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없는 남자

유무의 여부

by 유은


아쉽기만 한 것은 사랑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대체 뭘까,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걸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느껴본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니까. 어떤 게 사랑인지 느껴본 적 있으니까. 그래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사랑에도 다양한 형태와 느낌이 있다는 건 알지만, 확실한 유무만큼은 느낄 수 있다.


아, 이 사람은 사랑이 아니구나.


그렇다고 점심시간을 함께 보내고 농담을 주고받는 가까운 동료와도 다르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다. 그는 편했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만만했다. 내 기준에 만만한 남자였지만, 그래도 가끔은 카톡을 기다리게 만들고, 사라진다면 하루 이틀의 공허쯤은 남길 만한 존재였다. 왜냐면 난 착한 남자에게 마음이 가는 여자였으니. 그래서 가볍게만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가볍게 대하면 또 싫었던 모순, 이 내로남불. 제일 별로인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네가 상대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건, 너도 하지 마라.”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람 앞에서는 내로남불을 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관통하는 한 문장. ‘내가 갖기엔 아깝고, 누구 주기엔 싫은. 아니, 솔직히 누가 가져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나랑 놀아줘.’ 이런 썅년 같은 마음가짐. 자기혐오는 또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나쁜 년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상처도 받았다. 사실 상처라기보단 용기에 가까웠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가 하는 직언은 기분을 상하게 해도 내 앞길에 도움이 되었고, 그의 사랑 고백은 내 마음을 일시적으로 편안하게 만들었다. 딱 그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앞으로 감정을 함부로 배설하지 않을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술에 취해 내 상처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하지 않을 담력이 생겼다. 차라리 감추고 연기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거다. 드디어. 4개월만에!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통해,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의 그림자가 조금은 희미해졌다.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최소한 꺼내지 않아도 될 만큼.


그는 함께 있으면 즐겁고 꽤나 행복했지만, 미래는 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먼 미래는 상상할 수 있었는데, 가까운 미래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에 빠져 하루 종일 같이 집에서 배달 음식을 먹으며 나른하게 쉴 수 있는, 평범하고도 따분한 하루들, 그런 가까운 미래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술과 욕정뿐이었다. 취하면 예뻐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내가 사랑할 수 없는 남자였다.


나에게는 이미 진짜 사랑이라는 기준이 명확히 있었다. 사람들은 알아가며 사랑을 키워가지만, 나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어야 연애를 시작했다. 그래서 오래 연애하지 못한 것이다. 사랑이 아닌 관계에서는 결국 감정을 배설하고, 시험하고, 제자리만 맴돌았다.


아무튼, 내 미래를 위해 또 하나의 인연이 짧은 고생을 했다. 앞으로도 몇 번쯤 이렇게 사랑하지 않는 남자들을 흘려보내야 할까.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이번에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랑, 시작과 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나를 채우기보다 비워야 할 시기다. 완벽하게도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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