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의 힘

나의 꿈은 지겹도록 반복되는 것.

by 유은

루틴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죽지 않기 위해 사는 시간을 버티면서, 언젠가 사랑으로 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4월 끝자락 이별 이후 두 달은 기억조차 없다. 그다음 두 달은 무작정 놀았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안식 같은 시간을 맞았다.


나는 루틴의 힘을 안다. 하기 싫어도 반복은 결국 내 살이 되고, 내 일상이 된다. 요즘은 삶의 의욕이 없지만 애써 이겨내려 하지 않는다. 집 안에서는 가벼운 것만 삼킨다. 그래서 가벼운 유튜브만 틀어놓는다. 프렌즈조차 버겁지만 괜찮다. 다섯 번째 결말이 이제 곧이니까.


늦게 일어나는 주말, 처방받은 약과 멜라토닌의 시너지가 좋은지 요즘은 잘 잔다. 밥을 먹고 씻고, 한동안 몸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준비를 한다. 회사에선 입을 수 없는 옷을 고른다. 조금 비치거나, 짧아 타투가 보이거나, 브이넥이 깊어 신경 쓰이는 니트나 티에 청바지, 몸에 꽤 붙는 것들. 특별할 건 없지만, 회사 밖의 나를 확인하는 작은 의식이다.


예전의 나는 동네 밖을 벗어나는 걸 싫어했다. J와 만날 때를 제외하면 늘 동네에만 머물렀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 가는 게 불편했다. 하지만 요즘은 집과 회사의 경계가 무너져 답답한 만큼 주말에는 반드시 지하철을 탄다. 불과 10분 거리지만, 작은 책방이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곳에서 남들이 남긴 질문지와 짧은 글들을 읽는다. 어렵고 고전적인 문장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써 내려간 이야기들. 그것이 내겐 위로였다. 가끔 울컥하면서도 마음은 편안해졌다. 누군가의 기록이 마치 내겐 살아 있는 손길이었다. 확실히 지금 내 옆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글이 오래 남는다.


책방을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동네로 돌아온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자리에 앉는다. 알고 보니 SNS에서 유명한 곳이었지만, 저녁이 되면 내 자리 하나쯤은 있다. 레드와인을 얼음잔에 받아 글을 쓴다. 책방에서 본 문장들을 정리하며 내 언어로 옮긴다. 취기가 돌면 글은 조금 더 솔직해진다. 두 시간이 훌쩍 간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단백질 셰이크를 마신 뒤, 단골 바에 들른다. 위스키 네 잔쯤 마시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일주일 중 이틀 정도의 나의 루틴이 되었다.


사실 지금 죽지 않기 위해 살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걸 놓은 것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도 아니다. 억지로 무엇을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루틴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무모한 시간들을 지나며 받아도 되지 않을 상처를 받거나, 필요 없는 시간을 쏟지 않기 위해서다. 죽지 않기 위해 산다는 건 어쩌면 삶의 목적이 없는 상태일지도 모르지만 큰 상실을 지나온 사람은 그래서 루틴이 가장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을 지나며 분명해졌다. 나는 사랑이 있어야 산다. 그것이 일이 될 수도, 취미가 될 수도 없다. 나를 살게 하는 사랑은 결국 사람이다.


지인이 이 글을 본다면 웃을 것이다. 세상에서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뭐? 하며 비웃겠지. 그렇다. 사람을 싫어하는 내가 누구보다 사랑주의자다. 아무나 사랑할 수 없고, 일을 사랑할 수 없고, 취미를 사랑할 수 없으니 절대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몸을 섞는다고,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미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


정말 본능만으로 선택한다면 현재의 나는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쉽게 그러지 못할 것이다. 나는 겁이 많고, 사실 그만큼 절망적이지도 않다. 다만 상실과 공허가 깊게 스며들면 감당하기 벅찰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중심에 놓는다. 빠져들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기준의 힘이다.


결국 내 꿈은 단순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지겹고 지겨운 루틴을 반복하는 것. 혼자가 아니라면 지겨움조차 평화가 된다. 꿈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와 같은 날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나의 이상이다. 지금은 혼자 과정을 버텨내고 있지만,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 루틴을 공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완벽하다. 더는 바랄 것이 없는, 나의 꿈의 실현일 것이다. 지겹고 따분한 일상을 함께 버텨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에 대한 의심이 단 한 순간도 없다면, 어떤 시간을 지나더라도 꿋꿋이 버틸 힘이 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내가 꾸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절실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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