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이 갑작스럽게 폐원을 했다. 새 학기 한 달 전에 갑자기 통보받은 결정인지라 그 사이 새로운 유치원을 알아보고 입학원서를 내고 나름대로 좀 혼란의 연속이었다. 가장 걱정되었던 점은 생각지도 못하게 새로운 환경으로 내던져질 아이의 적응문제였다. 그렇다고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또 인간이란 언제고 예기치 못한 환경에 내던져지기 마련인데, 담대하게 적절히 무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더 나은 방향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으레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그냥 새로운 곳에 가서 잘 적응하고 잘 놀면 되지라는 식으로 얘기해 주고 드디어 어제부터 새 유치원에 등원헀다. 어제는 , 교실에 들어가서 좀 울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아는 친구들이고 자기만 낯선 곳에 들어가서 소외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과 얘기해 봤다고 하고 은근히 새 유치원에 재밌는 장난감들이 많은 것 같다고 호기심을 드러내는 걸 보고 내심 안심했다. 오늘은 울지도 않고 괜찮았다고 하는 모습에 애들은 오히려 더 적응이 빠른데 괜히 내가 더 불안해했다고 생각하며 더더욱 안심했다.
아까까진 그랬다는 얘기다.
아이를 재우는데 애가 갑자기 전유치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 얘기를 꺼냈다.
"엄마, 은율이는 선창유치원으로 갔는데, 거기도 폐원되고 나 있는 데로 왔으면 좋겠어. 아니 나 있는데도 폐원되고 숲사랑이 어떻게든 다시 문을 열어서 우리 친구들하고 선생님들하고 다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 아니, 그냥 내가 지금이라도 선창으로 옮길까? 거기는 은율이라도 있잖아."
라고 하더니 갑자기 침대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은율이는 내가 울면 와서 달래주는 좋은 친구였어. 나도 은율이가 울면 달래줬고, 우리 둘이 다른 친구들이 울거나 하면 힘을 합쳐서 가서 도와주고 달래줬어. 은율이보다 좋은 친구는 세상에 없을 거야" 라며 통곡을 했다. 여섯 살 때 만난 친구가 세상에 다시없을 좋은 친구는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완전히 잘못된 방향에서 접근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문제는, 적응이 아니라 상실이다.
아이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에서 비롯된 슬픔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인간인라면 누구나 그럴 텐데 단지 아이란 이유로 완전하게 내 관점에서만 생각했다. 중요한 건 내일의 과제가 아니라 오늘의 마음이다. 실연을 겪은 사람에게 다음에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고 없고는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시간 앞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 같은 것은 없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임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의 과정이다.
여섯 살의 상실감이란 당장 눈앞에 사과맛 마이쮸 하나에도 모든 것을 잊고 해사해지는 낯빛만큼이나 변덕스럽고 짧은 지속시간이 특징이겠으나, 여섯 살이라고 해서 상실이 쉬울 리는 없다. 온전히 내주는 마음만큼이나 상실의 슬픔 또한 온전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주 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이가 나와 같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내가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는 미숙한 존재라는 인식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 어떤 감정적 경험이나 기분 같은 고유한 것들조차 내 맘대로 예측하고 재단해서 결론까지 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