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애를 일찍 재우고 일기를 써야겠다 생각했다. 아이를 재우고 나니 열시. 나와서 잠깐 빨래를 개면서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음악을 몇 개 더 찾아보다 삼십분이 훌쩍 지나갔다. 빨래는 냅두고 이제 일어나야지 하다가 올해는 새해가 왔어도 인터넷으로 재미 삼아 보는 토정비결 한 번 안 봤다는 게 떠올랐다. 잠깐 본다는 것이 앉은 자리에서 2025 신년운세, 2025 토정비결, 2025 정통 운세까지 모두 섭렵하고 났더니 열두시가 다 된다. 이런 얨병할 샤머니즘... 바로 이 샤머니즘과 거지 같은 종교들과 광신도들이 앞다투어 나라를 망치는 이 시국에 애 딸린 유부녀가 대체 올해의 애정운은 왜 쳐 보고 앉았나. 그 와중에 애정운은 좋고 지랄이다. 다수의 이성이 뭐?! 왜?! .... 다수의 이성보다 내 대가리 속의 이성이 더 절실한 시점인 거 같은데?
인간은 뭔가 세팅이 잘못됐다. 애초에 이 유전자라는 것이 복제 이외에 다른 것엔 전혀 신경을 안 쓴 게 분명하다. 그냥 퍼뜨리기만 하면 다냐! 책임감을 가져라 자연이여.
어제는 세팅이 매우 잘못된 단백질 덩어리들이 조용한 이 지역의 가장 큰 이슈였다. 아니 저것들이 저기 앉아서 뭐라고 쳐 씨불이는 건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버스를 대절해서 돈 들여 시간 들여 조용히 사는 먼 동네까지 기어들어와서 날도 추운데 왜 길바닥에서 염병을 떠는 건지 진심으로 알 수가 없다. 누가 뭐랬나. 그냥 너네 살던 데서 니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똘똘 뭉쳐있어도 충분히 욕을 처먹을 텐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쌍욕을 처먹어야 버러지 같은 삶이지만 수명이라도 연장할 것 같은 어떤 관심병 같은 건가. 정말이지 한강 작가님처럼 우아한 언어만 쓰면서 살고 싶은데 세상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니까 그 버버리 목도리를 두르고 질이 너무 좋아서 구김 하나 없는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목사가 연단에 나가서 유해한 단백질 튀기면서 일으키는 소음공해에, 엉덩이가 아무리 시려도 그가 두른 고오급 캐시미어는 엄두도 못 낼 사람들이 열광하는 슬프고 열받는 부조리극을 굳이 왜 광주까지 기어 와서 오일팔 항전지 앞에서 연출하는 걸까. 왜 성경에 그런 거 있지 않나?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틀렸다. 저 부자 새끼는 애초에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 여기가 천국이니까. 근데 자기가 못 가는데 가난한 인간들이 들어가는 것도 배알 꼴리니까 저따위로 사나? 나는 잘 모르겠다.
요즘 그런 생각은 한다. 파시즘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뭐 대단한 악마 새끼들이 대단한 마음먹고 저지르는 폭력이 아니다.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가 있고, 이용당하는 다수 시민의 동기는 심지어 선량하기까지 하다. 나라에 대한 걱정, 나름의 애국심과 정의, 선량한 이웃이자, 개인적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집단 광기와 폭력이 파시즘의 기본 원리다.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바로 그 이름. 한나 아렌트가 부릅니다. 악의 평범성.
어제 그들이 마주하고 있던 전일 빌딩 건물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광주가 지켜온 민주주의에 내란 선동의 자유는 없습니다.]
이 앞에서 그런 집회를 한 것은 2차 가해다. 그 정도를 헤아릴 지능이 안된다면 그냥 보노보로 사는 것이 훨씬 이타적인 삶이었을 것이다. 아직 유해조차 찾지 못한 유족들이 많다. 어쩌면 그들이 깔고 앉아 애국하고 자빠졌던 그 땅 아래에 그 유해들이 묻혀 있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