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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형

by 기묘염

그제는 아이를 재워놓고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아파트 내에 있는 헬스장에 내려갔다. 살을 빼려고, 늙기 싫어서, 건강하려고, 이런 이유보다는 그저 생존을 위해 일어났다. 이대로 있다가는 무기력증에 영혼이 죽든, 나날이 심해지는 목 디스크로 몸뚱이가 목에 깔려죽든, 몸과 영혼에 분열이 일어난 몸뚱이가 경쟁적으로 파업을 일으킬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러닝머신 위에서 딱 삼십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경보를 했을 뿐인데 양심이 먼저 사망했다. 마치 건강해진 느낌. 매일 운동을 하며 건전한 땀을 흘리고 있는 성실한 노동자가 된 것 같은 기분. 러닝머신이 아니라 한라산을 오른 것 같은 뿌듯함. 돈을 주고 면죄부를 샀다던 중세인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올겨울 처음으로 흘린 땀에 육신의 죄책감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바로 이거지! 내일부턴 매일매일 내려와서 운동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다음날 가지 않았다.

가지 못한 이유야 당연히 있지만, 굳이 쓰지는 않아야겠다. 이미 남편이 이유를 듣고 입꼬리 하나를 눈 꼬리에 닿을 때까지 올렸기 때문에 더 이상 나 자신을 우습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가 늘 이런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저 곧잘 이런 사람일 뿐이다.

나란 인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이 내가 당면한 지상과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작년엔 최악의 민원인을 만났었다. 직장 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토록 난해한 인간은 처음이었다. 나는 비교적 친절하고 선을 잘 지키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 앞에서 그동안 지켜왔던 나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진심과 최선, 사력을 다해 맞붙었다. 그자는 내 싸가지에 가슴이 두근거려 앓아눕는 바람에 다음날 출근도 못했다며 다음날부터 나의 상사를 달달 볶기 시작했다. 본인과 맞붙은 건 나였지만 교활한 자들은 승산이 있는 곳을 잘 찾아내기 마련이다. 심약한 나의 상사는 매일매일 그자에게 시달려 어두워진 안색을 하고 뒷자리에 앉아 한 달간 한숨을 쉬는 것으로 나에게 수동 공격을 가했는데, 사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날의 내가 사랑스럽다. 갑질 하는 자들에게 자꾸만 승리의 경험을 쌓아주는 것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망신을 당하고 패배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경험들만이 그들의 몰상식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다. 나 하나 참으면 되는 그런 일은 세상에 없다. 내가 참음으로써 그들은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고 더욱 비대한 자아로 다른 누군가의 영혼을 짓뭉개 버릴 것이다. 사실 이건 인내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 그 사람이 다시 와서 업무를 봤다. 절대로 나에게 오지는 않는다. 완고하게 고개를 반쯤 돌린 채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배운 눈흘김을 시전하며 나를 향해 레이저빔을 쏘기는 했지만, 그건 마치 외계를 향해 쏘아 올린 지구인들의 라디오 주파수처럼 일방적이고 고독한 조난신호일 뿐이다. 몇백억 광년을 떠돌다가 되돌아와 이제는 흔적도 없어진 인류의 무덤 앞에 울리는 외계 생물의 공허한 답신처럼 아무 의미가 없다. 여전히 나사가 빠져있는 미친 인간이었지만 그때보다 한 풀 꺾인 게 느껴진다. 이미 한 명에게는 절대로 일을 보고 싶지 않으니 같은 장소에서 남은 한 명의 직원에게 똑같이 지랄을 떨 수는 없다는 게 그 조그마한 머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날의 나, 칭찬한다.


아이는 요즘 아빠를 부쩍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나랑 노는 건 좀 지루해하고 아빠랑 노는 걸 더 좋아한다. 주로 상황극을 하는데 상황극에 온몸을 던져서 리액션 해주며 몸으로 놀아주는 아빠와 아무리 말해줘도 ".. 그 뭐.,뭐라고?"라고 되묻는 엄마는 비교 자체가 안될 것 같긴 하다.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 공룡 이름이 뭐 고시랑 이 사우르스? 뭔 부경고 뭐라든가? 뭔데 그게. 등짝에 뭐로 공격하라고? 아니 머리에 관 이랬나? 뿔??.. 독??근데 공룡도 독이 있나?? 독이 아니라 돔??

..도대체 이게 이해도 집중도 못했는데 리액션은 어떻게 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놀라운 부성애 같은 건가.

내가 감동받는 포인트는 아빠랑 신나게 놀다가도 나한테 달려와서 내 귀에 대고

"사실은 엄마가 더 좋은데 그냥 아빠랑 놀아주는 거야."라고 내 감정을 살피는 발언(하나도 안 서운하다. 아빠 많이 좋아하고 더 좋아하고 아빠랑만 놀아도 된다!! 백 프로 된다!!!!)을 해주는 아이의 마음이다.

재밌게 놀다가 "아빠랑 노는 게 좋아 엄마랑 노는 게 좋아?"라고 하면 아빠!!라고 마음의 소리를 흘리고 쪼로로 나에게 달려와서 귀에 대고 "사실 엄마랑 노는 게 좋은데 힘든 건 아빠가 하고 엄마는 좀 쉬어"라고 해줄 때마다 너무 사랑스럽다( 쉬니까 좋아서 그러는 거 아님. 조금 그렇긴 하지만 여하튼 아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고 타인의 감정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성의 정수다. 그 싹을 발견할 때마다 안도감과 함께 벅찬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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