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하고 왔다. 올해부터는 뭔가 나라에서 해주겠다는게 많아졌다. 나라에서 뭘 해주겠다는데는 통계의 과학이 존재할 터. 시원하게 돈내고 종합검진을 받았다.
나같은 서민들의 평민들의? 노비들의? (이 시대의 문제는 내 계급을 명쾌하게 정의 내릴 수가 없다는 거다. )건강검진이란 변변찮은 검진시설과, 부담스러운 검진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장 많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바로 시간이다. 공장식으로 설계된 검진시설에서, 검사를 하나 할 때마다 사십분씩 대기해서 다섯시간동안 기빨리는 반나절을 보내고 나면, 내가 끌고 다니는 것이 몸뚱이인지 연식이 좀 되서 부품점검을 받는 자동차 같은 건지 잘 모르겠다. 널 위해서 잘 굴러가라고 점검하는 건 아니고, 아직 너를 굴려도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점검을 좀 해보겠다. 라는 국가의 강한 의지 덕분에 황송하게 공가까지 내고, 무려 다섯시간을 (그중 네시간은 기다리는데 썼다고 장담한다) 소중한 몸뚱이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이였다.
대기실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남녀노..를 불문하고 모두 같은 가운을 입고, 일사분란하게 이방 저방 들락거리는 일은 늘 이질적인 경험이다. 일단 같은 옷을 입은 인간은 이상한 의미로 평등하고, 서로를 재보거나 판단할 수 없다. 낯선이들 앞에서 노란 소변이 찰랑이는 소변통을 휘두르며걸어다니고 흐트러진 가운에 노브라로, 혹은 뒤가 뻥 뚤려 엉덩이를 희한하게 가린 바지를 입고도 잘만 돌아다닌다. 서로의 몸은 판단이나 정서적 교류의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신체일 뿐이다.
이 많은 사람중 몇 프로나, 오늘의 검진이 유의미할까. 어 중 몇명이나, 지금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 삶의 시험에 들게 될까. 그게 나일까 아직은 아닐까.
물론 바로바로 나오는 결과도 있다.
복부 초음파를 하시던 선생님이 시작과 동시에, 그 내가 작년에 체중관리를 좀 하시라고 말씀 드렸나? 라고 친근하게 말을 건다거나, 다 끝나고 잠깐 들러 2분 정도 소견을 들려주는 의사가 근데 근력이.. 이게 맞나요? 운동을 전혀.. 일은하시나요? 라고 묻는다. 나는 몸이 마쉬멜로일지언정 아직 뇌가 빠가는 아니므로 화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이해했다. 의지가 부족할 뿐..
한번뿐인 인생 걍 좀 먹고 좀 찐채로 살아도 되는데 이거 신념이나 삶의 철학차원에서 접근해주시면 안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