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쉬는날이 끝나간다. 주말이면 유독 멍청불면증에 시달린다. 잠이 안와서 못 자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 아까워서 못자는 바로 그 병. 한시가 넘었는데도 일 없이 깨어있다. 지금 자도 여섯시간밖에 못자네.. 지금 자면 다섯 ..
잠을 안 잔다고 해서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핸드폰이나 만지작 거리며 쓸데없는 영상 ,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들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방금은 문어 영상을 봤다. 암컷 시드니 문어는 수컷 문어가 귀찮게 하면 밥상을 뒤 엎듯 바닥에 있던 조개껍대기들을 뒤엎어 버리고 수컷 문어에게 돌을 던진다. 어찌나 박력있게 조개를 걷어차는지. 심지어 발이 여덟개나 되서 무슨 우박쏟아지듯 돌이 날아간다. 문어는 지능이 높으니 수컷 문어가 뭐 맞을 짓 했겄제. 라고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음 영상은 돌고래를 업어주는 혹동고래 영상이였는데, 근데 내가 새벽한시에 왜 이런 걸 보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지 잘 모르겠다.
연휴 첫날은 7세 어린이와 70이 거의 다 된 엄마아빠를 모시고 엘피카페엘 갔다. 무수한 엘피판들 사이에서 추억을 찾아 듣는 공간이였다. 가기 전 내 망상속에서는 엘피판 앞에서 함께 비틀즈를 찾아듣는 내 아이와 나, 대학가요제 노래를 들으며 우수에 빠지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보였는데, 실제는 좀 달랐다.
아이는 본인이 아는 hey jude한곡 듣자마자 흥미를 잃고 온몸으로 공룡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공룡흉내란 실제로 크아앙 소리를 내며 두 앞발(양손)을 갈퀴처럼 만든 후, 목을 허리밑에서부터 반동으로 웨이브를 줘서 늑대인간처럼 고개를뻗어 큰 소리로 공룡소리를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이 모든 동작이 매우 유려하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져서 아 이거 공룡이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엄마 아빠는, 듣고 싶은 엘피판을 찾기 위해, 검색용pc 앞에 앉아서 계속 내 이름을 부른다. 이거 왜 없냐. 이건 왜 안나오냐. 이건 뭐라고 써있는거냐. 그래서 2L21-8 이 어디있다고?
엄마, 엄마 어디가 . 나랑 공룡서식지 놀이할래?
ㅇㅇ아,,ㅇㅇ아 송창식 앨범이 왜 안나올까?
엄마 여기 화산이 폭발하고 있어!
ㅇㅇ아 턴테이블 이거 소리 어떻게 키우냐!
문어가 부러웠다. 여덟개의 다리로 야무지게 상을 뒤엎고 싶었다.
둘째날은, 아이와 조카 한명을 동반하여, 두 어린이와 두 어른이 물놀이 캠핑장에 갔다. 나는 길바닥에서 자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므로, 당일만 텐트를 빌려 물놀이도 하고 텐트 안에서 고기도 굽고 라면도 먹으면서 대충 캠핑 기분만( 내 아이는 리얼캠핑을 할 기회가 없을 확률이 높으므로) 내주었다. 바베큐가 아니라 인간이 구워질 것 같은 날씨였다. 야외고 물놀이장이므로 에어컨이 없는데다가, 텐트 앞에서 더운데 음식익히랴, 애들 뒤치닥거리하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셨다. 너무 더워서 물에 들어가면, 미친..(미안하다 어린이들에게 부적절한 표현이지만 이것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다)..., 그러니까 뭔가 좀 미쳐버린 것 같은 광기 어린 강철체력의 어린이들이 쉴 새 없이 물로 공격하고 말로 공격하고 정신적으로 공격을 가하므로, 한시간도 지나기 전에 나는 이미 지쳤다. 그냥 바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런 선택을 한 내 자신을 저주하며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그냥 눈을 뜨자마자 피곤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더 피곤해졌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시간이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자원이 아니라, 어떻게든 채워야할 숙제가 되어 버린다.
한 인간을 키우는 연료는 누군가의 시간과 젊음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어서, 생명의 불씨를 지피는데에는 다른 생명이 에너지가 투입된다. 달리말하면, 이 세상에 나고 자라 움직이는 인간들 중 누구하나 제 나름으로 혼자 자란 인간은 없다는거다.
누구나 달고다니는 그림자. 우리의 후광이자 삶의 연료이자 어깨에 매고 다니는 짐이자 그림자. 인간이란 대충 그런것을을 짊어지고 다니는 존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