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을 보고 있다. 장르는, 아마도 판타지인 것 같다. 극 중 인물들의 인간성이 너무 이상적이다.
특히나 천상학은 존재 자체가 판타지다.
물론 내 개인적인 불운탓일수도 있겠으나 내 경험상 이십대에 천상학같은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십대의 나도 은중이는 아니였다. 내가 겪어본 이십대의 우리는 모두 자아비대증에 걸린 나르시스트들이였다. 그 시절을 기꺼이 서로의 지옥이 되어 보고 나서야 인간은 한 단계 고양할 수 있다.
천상학처럼 생각이 깊고, 상대에게 공감하고, 배려하고, 자신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심지어 인정하는 이십대 초반의 군인이라니.
진지하게 대화하고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상대가 불편할까봐 애정을 갖고 소속해 있던 집단에서 스스로 물러서서 질척이지 않는 이십대 남성과, 아직도 좋아하는 미련과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물러날 순간에 깨끗히 물러나 뒤돌아보지 않는 이십대 여성이라니..!
그 시기엔 상대의 감정보다 자기감정에 심취해서 술먹고 말줄임표 백개찍은 "자니?...."문자만 오조오억통 보내는 게 정석 아닌가????? 이 모든 판단과 경험은 그저 나의 불운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여튼 나는 은중과 상연을 전반적으로 판타지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지금이라면 조금 더 성숙하고, 조금 더 관대한 마음으로 어른스러운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성숙이 빛을 발하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이제와 굳이 나의 성숙함과 관대함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수틀리면 엄마 미워를 연발하는 7세 남아뿐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좋은 미덕과 인격이라도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아무래도 우리의 제도가 우리의 발달주기를 잘 못따라 가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생물학적인 노화에 속도에 비해 정신이 무르익는 속도가 너무 느리게 만든 것이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 이십대의 내가 이정도였더라면 우리의 삶이 서로의 은중과 상연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어른들의 사무치는 회한이 이 드라마의 장르일지도.
아직 6화까지밖에 안봤는데 나의 이십대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