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길기 때문에 언제 출발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밀릴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통정체란게 그렇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도 감당할 수 밖에 없는 것.
가는데만 9시간이 걸렸다. 아침 아홉시 반에 운전대를 잡아서, 저녁 6시에 도착했다. 아 물론, 중간에 휴게소에서 두어번 쉬고 밥을 한 번 사먹긴 했지만, 그게 뭐 ... 그렇다한들 2박 중 하루를 길바닥에서 보냈다.
게다가, 부산롯데월드는 서울에 비해 너무나 한산하다는 헛소문을 듣고, 둘째 날 일정을 롯데월드를 잡았다. 가는 곳마다 차가 막히는데 들어가는 식당마다 웨이팅이 있었고, 롯데월드는 뭐.. 기다림의 연속이였다. 칠십대 어르신과, 7세 남아와 함께 2분짜리 놀이기구를 50분씩 기다리는 것이 너무 버거워, 매직패스를 구매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간신히 참았다. 기업의 입장에서야 이윤이 목적이므로 매직패스를 만들든 슈퍼프리패스를 만들든 제 맘이지만, 몇푼 더내면 합법적인 새치기를 할 수 있고, 오십분씩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간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작은 우월감과 쾌감을 느끼는 것이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한 아이에게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고, 인간은 평등한거라고 백날 교육해봐야, 돈만 더주면 더위속에서 기다림에 지쳐 몸을 베베 꼬고 있는 또래 어린이들을 지나칠 수 있는 경험한 번 만으로도 교육이 형식적인 구호밖에 더되겠나 생각도 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삶이란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남의 시간을 돈주고 소비하는 경험보다, 생계를 위해 타인에게 돈을 받고 시간을 파는 삶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우아하게 먼저 들어가는 삶보다, 부럽게 바라보며 주어진 기다림을 감내하는 쪽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주어진 삶과 언뜻 엿본 다른 가능성의 간극이 쌓여 현실이 불만족스럽고 불행한 것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겨우 몇 푼짜리 표를 가지고 염병 유난 떨고 싶지 않지만, 작은 것들에 예민해지지 않으면 작은 신념조차 지킬 수 없는 세상이라서 그렇다.
여튼 뒤지게 기다리는 법이나 배우고 왔다.
뭐라도 배웠으면 됐지..
해운대밤바다의 분위기, 수많은 인종이 섞인 여행지의 들뜸, 끝없는 수평선이 보이는 광안대교(끝없는 차의 행렬도 경험할 수 있다.. 사이에 끼어 멈춘채로) 특별히 역사적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돈은 많아 보였던 해동용궁사의 해안절경 (처음 절을 지은 사람은 경치 좋은 바다절벽 위에 위치한 해안가의 고즈넉한 작은 사원을 꿈꿨을 지 모르나, 의도치 않은 유명세로 국경없는 지구촌을 체험할 수 있었다. 고즈넉과는 멀어졌지만 아주 현대적인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코스 태종대(자연에 관심없는 40대 이하로는 비추) , 나를 위한 공간 센텀시티(어르신 무릎이슈로 쇼핑은 하나도 못하고 밥만 먹었다.)등 아주 꽉 찬 여행이였다. 그리고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으나 부모님과 7세 아동의 만족도가 높았다. 왜 좋았다는 건지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대답을 못하긴 하지만 여튼 좋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깨달았다. 아 내가 삼일 내내 피곤했던 건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니여서구나. 부모님과 아이가 만족할만한 동선과 계획을 짜고, 그 걸 잘 해내서 그들이 만족하고 기뻐하는 걸 보는 뿌듯함이 나의 기쁨과 만족이라고 착각했구나 .라는 이상한 깨달음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근래에 나는 나를 위한 여행을 한번도 계획해 본 적이 없다. 뭐 .. 내가 뭐가 중요하나. 나 어렸을 때는 내 부모가 나를 위해 계획했겠지 라고 동양적인 자기 합리화를 해보지만 어쩐지 마음이 좀 헛헛하다.
다수가 즐거웠고, 무사히 도착했으면 됐다.
명절에는 어디 가는 거 아니라는 큰 교훈을 얻었으니, 남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