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끝의 월요일이였다. 아, 물론 금요일 출근도 범상치 않았다. 금요일엔 농협직원이 마감 직전에 뛰어들어와서 저 오늘죽다살아났어요. 라고 했고, 광주은행 직원이 넋나간 표정으로 들어와서 이제 이런 긴 연휴는 없는게 낫겠네요. 여긴 괜찮나요? 라고 서로의 생존을 물었다. 물론 나도 경추 척추 요추가 일번부터 끝번까지 어깃장 나는 거 같기는 했으나 오늘에 비하면!! 그래 오늘에 비하면 괜찮았던 것 같다. 오늘 농협직원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문닫기 직전 들어온 광주은행 직원은, 매일 오던 직원이 아니였다. 결국 둘은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나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생긴 나의 좌우명은 '그래도 하루는 간다' 다 . 바빠도, 드러워도, 짜증나도 , 열받아도, 좀 덥고춥고 끈적여도, 어차피 하루는 간다. 뭐 좀 어렵게 가냐 쉽게 가느냐의 차인데 아무리 어려워도 한 이틀 지나면 기억도 안 날 , 똑같은 어제에 불과하다. 반복되는 일상은 삶을 지탱해 나가는 루틴이지만, 싱싱한 자극을 안겨주는 삶의 기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도파민 한방울 안나오는 메마른 직장에서, 하루하루 기쁨과 안락을 갈구하다는 정신질환으로 병사하는 수가 있다. 그저 이곳은 나의 업보이자 보잘것없는 나의 곳간이다. 개같이 벌어서, 셔터 내리고 내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홈스윗홈!
그럼에도 바쁠때마다 절망하며 깨닫게 되는 것은, 뭐라고 허울좋은 이름을 붙여대도 내 일은 단순노동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단순 노동이기 때문에 그래도 하루는 가고, 똑같은 어제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난쟁이의 아들과 딸이 하루종일 서서 구멍을 뚫어대며 스스로가 부품이 되었던 그날부터 이어져오던 역사는 장엄하고 굳건하게 흐르고 있다. 난쟁이의 아버지는 노비였다.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사무실에서 공무원이네 은행원이네 회사원이네, 사무직이네 생산직이네, 정규직이네 비정규직이네 선을 그어봤자, 결국 우리는 돌아가는 컨테이너에서 약간의 역할과 작은 권한의 크기만 다를 뿐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난쟁이의 후손들 아닌가. 바쁜 와중에도 마주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계급의식이 나를 환장하게 한다. 그건 때론 직원들이 손님을 평가할때도, 손님이 직원을 막대할 때도 어김없이 튀어나와 내 명치를 가격하는 작은 공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