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발령으로 정신이 없다. 그래봤자 뭐 그냥 가라는데로 가서 똑같은 일 하는 거고, 심지어 내일 날짜라서 아직 발령이 난 것도 아닌데, 정신이 없다고 밑밥을 깔아봤다. 이 주 전에 다녀온 대만여행...아니고 관광에 대해 기록하려다가 첫날만 쓰고 중단한 지 이주가 넘었기 때문이다. 그냥 게을러서 그렇다. 발령을 핑계로 송별회를 ..왜! 뭘! 여튼 수십번 하느라 그랬다 치자. 이제 이미 놀러다녀온 흥분이 가라앉았고, 일상은 힘이 세서, 그때의 기분을 먹어 치워버렸다. 그래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잊어버릴 거 같으니 마저 기록하기 위해, 간만에 컴터를 켰다.
대만의 두번째 날은 어르신과 어린이를 위한 택시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대단한 절경이라는 예류 지질공원과, 만화속에 들어온 것 같다는 지우펀, 스펀의 풍등 날리기, 대만의 작은 나이아가라라는 스..어쩌고 폭포. 를 엮어서 택시를 타고 하루종일 다니는 코스였다. 여행의 묘미는 예측 불가능성이라 했던가. 모르는 소리. 노약자를 인솔하는 내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함이 최대의 미덕이다. 그래서 성격에 맞지 않게 모든 변수에 대해 미리 할수 있는 만큼 다 검색하고 대비해두었다. 덕분에 예측 불가능성은 크게 줄고, 대신 예측 가능했던 재앙과 함께 했다. 나와 일정을 함께 했던 태풍은 물론 일주일 전부터 다양한 예보를 통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변수였다. 예측만 했다. 망할제우스도 아니고 내가 뭘 할 수 있나.
예류 지질공원은 정말이지.. 대단한 절경이였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 엄청나게 화가 나있는 파도를 보면서 자연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탄성(혹은 비명) 이 쏟아져 나왔다. 으악 저거 쓰나미 아니야? 아니야 파도야 진정해. 그래도 왔으니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사방에서 곡소리가 터졌다. 으악! 나 파도 맞았어! 아니야 비 아니야?? 몰라 짜! 파드득파득파득(심한 바람에 우비 찢기는 소리) , 피해 좀 앞으로 와 휩쓸리면 죽어! 저기 저 사람 안전요원 아니야? 누구? 저기 우산뒤집어진 사람???
다이소에서 사간 이천원짜리 비닐우비가 장렬하게 전사했다.애초에 전사할것도 말 것도 없이 입으나 마나였기 때문에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어딘가 여행사에서 단체로 온 페키지 무리가 단체로 지나가는데, 비옷이 너무 짱짱해보여서 붙들고 비옷을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주차장에서 리어커로 비옷을 팔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에게 샀따는 말을 듣고 달려가서 비옷부터 샀다. 내가 경험으로 깨달은 생활의 지혜는, 대만의 특산품은 바로 비옷이라는 거다. 비옷이 정말이지.. 갑옷같았다. 튼튼하고 짱짱한것이 고어텍스 바람막이 저리가라였다.심지어 색깔도 예쁘다. 영화에 나오는 살인범들이 뒤집어쓴 시커멓고 우중충한 비옷도 아니고, 빨강 노랑 초록 분홍 청록 파랑 .. 뭐 여튼 아주 다양하고 어린이용도 있고 사이즈까지 다양한 비옷이 불과 오천원!! 무적의 비옷을 마련하고 나니 강풍도 폭우도 태풍도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깔깔거리며 여기 왔던 수많은 한국사람들 중에 이런 쓰나미같은 절경을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하늘도 돕지 않는 박복함에 맞서는 훌륭한 긍정의 정신을 드높일 수 있었다.
다음 코스는 스펀에서 풍등을 날리는 거였다. 빗속에서 날리는 풍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우리라도 약간 할말을 잃었다 . 태풍으로 인해 거의 모든 여행사들이 일정을 취소하는 바람에,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상태였다. 유명하다는 닭날개 볶음밥? 닭다리볶음밥집도 땅콩아이스크림집도 아무데도 문을 열지 않았다. 도저히 일정을 바꿀 수없던 몇몇 불행한 여행객들만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풍등은 올라가고있었다. 자본주의의 무서움이란 이런거다. 생계는 태풍도 막을 수 없는 법. 풍등에 삶을 건 풍등의 달인들이 공장처럼 척척척 풍등을 걸고 뒤집고, 관광객들은 거기에 비슷비슷한 소망들 (가족건강 , 돈많이 벌게 해주세요. 누구누구사랑해. )들을 정성스레 붓으로 쓰고 (비가와서 먹으로 쓴 글씨가 다 흘러내린다. 주룩주룩.. 흐르는 것이 먹물인지 빗물인지 뭔 마스카라같기도하고) , 다 쓰고 나면 풍등달인들의 안내에 따라 귀퉁이를 잡고 모여서 그들이 요구하는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전문가의 손길로 공장형사진이 탄생한다.) 은 후, 풍등을 하늘로 날린다. (안에서 부적같은 거에 불을 붙이면 작은 열기구처럼 날아간다) 우와 하고감탄하며 잠깐 기분이 좋아 폭우속에서도 비상하는 우리의 소원을 넋을 놓고 잠깐 감상한다, 잠시 후 쓰레기처럼 바닥으로 추락할 우리의 소원을 뒤로하고 (그런 너저분한 결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지. 내눈에 안보이면 추락은 모르는 일이다) 여운만을 간직한채 언른 택시에 오르면 된다.
세번째 코스 폭포는, 태풍으로 인해 입산금지가 되서 못들어갔다. 비오는날 계곡에 갔다가는 죽을 수 있으므로 우리도 아쉽지 않았다. 목숨과 바꿀만한 절경일 거 같진 않다.
네번째 코스는 지우펀이였는데.. 만화속에 들어온 거 같다고 했는데, 만화의 장르가 혹시 머털도산가? 음산한 안개속에 폭우가 미친듯이 쏟아지는데, 백팔계단 ..(은 아니고 한 삼백팔개단정도는 될거 같았다. )을 내려와야했다. 전코스에서 취소된 폭포가 계단에서 구현된 줄 알았다. 떠내려가지 않을까 염려하며 절퍽거리는 비를 밟고 계단을 내려왔다. 여행객의 정석대로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 운동화 속에 홍수가 났다. 이 후 삼일 내내 냄새나고 젖은 신발이 도저히 마르지를 않아서 마트에서 크록스 비슷하게 생긴 이상한 고무신발을 신고 여행을 해야했다.
아기자기한 여행을 예상했고, 지우펀에서 기념품을 많이 사서 주변에 뿌리려고 했으나. 가게문은 거의 닫혀있고, 비는 미친듯이 내리는 통에, 폭포같은 계단속에서 지옥훈련을 하며 둘째날을 마쳤다.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자 비가 약간 소강상태에 접어들어서. 우리집 노약자인 엄마와 아이는 호텔방에 잠시 남겨두고 아빠와 나와남편 셋이서 화시제 야시장에 갔다. 비위가 좋은 우리끼라 나가서, 따끈한 고기국수에 공심채를 한접시 먹고 나니 긴 하루가 다소 위안이됐다. 전혀 검색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다 현지인들 많아보이는 곳에 아무데나 들어가서 통하지 않는 언어로 버벅대며 주문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강을 가득 올려준 샤오롱바오를 길거리에 선채로 먹고 왔다. 이번 여행중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그순간이였다. 가족들을 인솔하고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없이 그냥 되는데로 나가서 셋이 낯선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무거나 먹었던 그 순간이 가장 좋았다. 태풍 속을 돌아다닌 그날의 기억이 지나고나면 기억에 남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밤에 타국에서 열이 39도까지 오른 7세를 돌보느라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다시한번 인천공항에 있는 응급의료센터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응미 든다. 미리 거기서 해열제와 항생제를 지어가지 않았다면, 낯선 곳에서 아이를 들처안고 병원을 찾아 헤맬 뻔 했다. 이래저래 일이 많았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다만, 인간이란 또 모든 것에 적응하고 대충 맞춰가면서 정신승리할 수 있는 존재인지라, 둘 쨰날도 나름대로 우리의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