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대만여행을 마무리하는 글을 올릴 거 같다. 갔다온지 한 달 된 거 같은데, 미국이라도 다녀왔으면 일년동안 썼겠네. (실제로 유럽 다녀와서 일년동안 기록 미루다가 결국 안 쓴 경험이 있다. )여튼 가까운게 장땡이란 얘기다.
대만 두번째 날 야심차게 택시투어를 기획하고! 셋째날은 무계획으로 갔다. 뭐 핸드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검색할 수 있는 세상에, 도착 후 하루만 계획해 놓고, 그날 밤 호텔방에서 다음날 계획을 세우면 되지 않나 .. 하는 똑똑한 f 의 여행스타일이랄까.. 라기 보다는 그냥 게을러서 그렇다. 여행갔다와서 일기 쓰는데도 한달 걸리는 인간의 계획성이라는 것이 이렇다. 살면서 한번도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다. 심지어 자유여행으로 프랑스에 신혼여행 갔을 때도 비행기랑 숙소만 예약하고 그냥 가서 되는데로 (이런 사람들이 꼭 어디서 똑같은 사람하고 결혼한다. ) 떠돌다 왔었다. 그나마 70대 어르신들과, 7세 유아가 있어 하루 계획이라도 세운 것이니 나로선 장족의 발전이다.
전날 태풍속에서 도파민이 터진 70대가 기대에 차서 오늘 일정은 뭐냐 라고 물었을 때 나는 다 계획이 있는 것처럼 자신있게 오늘은 동쪽으로 간다. 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실제로 잠깐 비가 멎은 고요한 오전에 (그 오전의 한 때 태풍의 눈 안쪽에 있었던 것 같다. ) 동쪽을 향해 걸었다. 싸복싸복 인도와 골목을따라 걸으며 낯선 문명을 기웃거렸다. 상점이 즐비한 거리에서는 한약재 다리는 냄새가 났다가 고기국수냄새가 났다가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났다. 지나가는 걸음 걸음 냄새가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냄새를 따라 고개를 쭉 내밀어 눈으로 정체를 확인했다. 대만의 생강은 사람 대가리만 하다며 놀라고, 묘한 약재 냄새가 나는 곳에서 끓고 있던 약항아리를 보면서, 여기나 거기나 장금이들은 저런 항아리랑 천을 쓰나보다 하고 반가워했다. (장금이가 … 의녀가 아니였던거 같은데 ) 매사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상한 우월감을 표현해서 나를 뒷걸음질치게 만들었던 엄마는 ( 일행 아닌척 자꾸 뒤로 가게 되는 타입이다. 안맞아..) 여행 중 처음으로 반색을 하며 만세를 불렀다. ”야!!! 저기 스타벅스다!!!“
일단 스타벅스를 발견하고 나니 어르신들과의 여행 난이도가 낮아졌다. 일단 앉기 . 익숙한 냄새와 분위기에 안심하며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대만 스타벅스의 기념품같은 것들을 구경하다가 대만 이라고 써진 에스프레소 컵도 사고 ( 집에 비슷하게 생긴 먼지쌓인 것들이 오조오억개다. 어디껀지도 기억안…) 대만스타벅스의 코인 초콜릿 (똑같은데 통만 시뻘건 색이다) 도 사고. 뭐 그런 자잘한 것들을 하며 기뻐했다. 앉은 김에 가까운 대형마트를 검색해서 (까르푸가 바로 옆에 있엇다) 다음 코스로 잡았다. 무계획 인간들은 마트에 가서도 뭐가 유명한지 뭘 사야 하는지 기념품의 가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자본 주의는 언제나! 성향이 어떻든 성향따위로 우리를 배제시키지 않는다.(오직 자본으로 배제 시킬 뿐..) 우릴 위해 사람들이 많이 사가는 유명 기념품코너를 따로 만들어 둔 덕분에 대충 거기서. 여행 후 한국에 가서 지인들에게 입을 털며 작은 생색을 낼 수 있게끔 쇼핑을 한 세카트정도 했다. (이게 정상인가?)
우리 위를 지나가는 태풍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므로 양 손 가득 기쁘게 쇼핑봉지를 들고 언른 숙소로 돌아갔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식당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었다. 엄마는 식당에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아무데나 들어갈 수 없어서 급히 검색해서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미슐랭식당 틴타이펑으로 갔다. 사실 딘타이펑은 나는 예전에 홍콩여행때 가본 적이 있다 . 내 기억에는 시그니처 매뉴인 샤오롱바오보다 걍 오이무침이 제일 맛있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굳이 줄서가며 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나빼고 모두에게도 오이무침이 제일 맛있는 미슐랭식당을 겪어볼 권리가 있었으므로 일단 갔다. 삼일 간 본 것중에 가장 높고 화려한 건물의 지하에 가장 사람이 붐비는 곳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주 많이 기다려서 만두를 (이름만 다른 한 열가지의 만두.. 맛있는 만두 그럭저럭 괜찮은 만두 맛없는 만두, 뭔 맛인지 모르겠는 만두 퍽퍽한 만두 촉촉한 만두) 종류별로 먹은 후, 그 느끼함을 달래줄 오이무침을 애타게 찾으며 대만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이게 점심인지 저녁인지 애매한 시간이였고, 먹고 나서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마치 그건물이 101층짜리 전망대라고 하므로 전망대에 올라가서 야경을 봤다. 야경을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버스도 타봐야지 싶어 버스를 타고 가장 크다는 야시장으로 갔다. 또다시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첫날 산 갑옷같은 비옷을 익숙하게 꺼내 입고, 뭔가 모양은 다르지만 다 비슷한 기름진 맛의 음식들을 길가에 늘어선 오락기 천막 아래 쭈그리고 앉아 글로벌 그지마냥 손으로 주워먹엇다. 맛있고 덥고 추웠다.습하고 더운데 비는 차갑고 태풍은 이리치고 저리치고, 비옷은 끈적하고 덥고 , 연기는 자욱한 진짜 대만같은 대만의 마지막 밤이였다.
다행히 마지막날 밤, 우리와 함께 왔던 태풍이 우리와 함께 훌쩍 지나갔으므로, 다음날 비행기는 연착이나 취소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가기 전부터 나를 걱정시켰던 태풍이 우리의 여행에 플러스였는지 마이너스였는지 나는 모르겟다. 나는 이번 여행을 태풍과 함께 했지만, 태풍이 없는 여행은 가능성이였을 뿐 겪어 보지 못했으므로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는 단지 하나의 경험을 하고, 하지못한 경험들은 상상속의 가능성일 뿐으로 더 좋았을 지 나빴을 지 영원히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태풍속에서도 그럭저럭 그 순간을 살았고, 와서 적고 보니 그렇게 나쁘지 않은 여행이였던 것도 같다.
드디어 한달 걸린 관광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