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찍는 중년!

by 기묘염

유치원 졸업앨범을 만드는데 원장님이 가족 사진을 예약해 두셨대서 사진을 한 컷 찍고 왔다. 사진관에 가족 의상이 이것 저것 준비되어 있었지만, 굳이 왜 같은 옷을 입고 가족 사진을 찍어야 하는 지 모르겠어서, 그냥 입고 간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약간 루즈한( 옷 설명에 보면 루즈해서 여리여리 날씬한 어쩌고라고 써있다.)회색 니트를 입고 갔다. 루우즈한 그레이 색상의 니트에서 루즈가 잘못된 건지 그레이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고 보니 한마리 거대한 회색곰 같았다. 판매자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걸까 아니면 내 몸뚱이가 옷의 장점을 씹어먹어버렸나?

사진사님이 차분하게 나만 확대해서 포토삽 작업을 시작했다. 뭐 사람은 눈이 두갠데 카메라는 눈이 하나여서 실제보다 크게 나올 수 있다는 둥, 실제로 절대로 이렇게 막 넙대대(진짜 넙대대라고 말씀하셨다, 아야..) 하진 않다는 둥 하시면서 내 온몸을 포토샵으로 터치한 뒤, 아이는 머리털만 한번 터치하고 남편은 한 두어번 터치했다. 사람은 눈이 두개고 카메라는 눈이 하나여서 나만 실제보다 크게 나온건가? 아이와 남편은 카메라 두 개로 찍었나? 그렇게까지 위로해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 너무 위로해 주셔서 위로펀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였다. 뭐 여튼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진짜 사진실력이란 무엇인가. 찍기인가, 위로하기인가, 터치하기인가. 포토샵으로 한 십키로 감량했더니 배가 너무 고파서 저녁을 폭식한 거 같다. 일종의 요요랄까.

집에 돌아왔더니 통장님이 아이의 취학통지서를 전달해 주셨다. 통장이라니. 어디에 꼽아져 있거나, 뭐 조금 더 품이 간다면 집배원분을 마주칠 줄 알았는데, 역시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일을 허투로 하지 않는다. 통장님이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구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확인하고 전달해 주셧다. (이 아파트에 8년을 살았는데 통장님은 또 처음봤다.) 막상 취학통지서를 손에 받으니 좀 떨렸다. 이제 진짜 시작인 거 같은느낌.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한참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왔는데, 좀 숨이 찰 때쯤, 이제야 등산로 입구 라고 써있는 간판을 본듯한 그런 기분이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신발끈을 고쳐매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입학 신청서와 안내장을 아주 꼼꼼히 읽었다. 빈칸만 보면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볼펜부터 집어들었는데, 오늘은 꼼꼼히 읽고 빈칸을 아직 채우지 않았다. 그저 이름을 적는 것도 약간 조심스러워서 다시 곱게 봉투안에 넣어 두었다.
입학통지서를 봉투에 넣는 것으로 영화의 한 막이 끝나고 , 다시 봉투를 열어 그걸 꺼내 기재하는 것으로 새로운 한 막이 열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어떤 순간은 꼭, 인생의 단락을 나누는 그런 기분이 든다. 이 장면으로 내 삶의 1막이 끝났다. 하는 식의 나래이션이 들린다거나(수능장 나올 때 한 번씩들 듣지 않나?) 지금 이 순간과 함께 , 혹은 저 사람과 함께 나의 청춘은 막을내렸다. 같은 그런 느낌.
아! 이게 중년이 시작되는 그 느낌인가?! 학부모님께!!라니. ..

중년이 시작되서 그런지 피곤하다. 포토샵으로 십키로 감량해서 그런걸 수도 있고, 단순히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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