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 예쁘게 꾸미자!! 라고 말한지 한달 째다. 크리스 마스 5일 남았는데, 5일 남기고 만들면 가성비가 좀 떨어지나? 전구 얽혀서 못쓰는데, 오늘 전구 주문하면 내일 오나? 내일 일요일인데 모레 오면 3일 남는데 3일 전에 만들어서 일월 내내 놔두고 연말연시 기분 내면 되지.
우리집 일곱살과 진지하게 상의했더니 일곱살이 의견을냈다.
“엄마, 그냥 어디 벽에 양말이나 걸어놓자. ”
얜 아무래도 날닮은 거 같다.
연말인데 약속이 하나도 없다. 분명 12월에는 이리저리 술자리도 다니고 오랬동안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도 몰아서 만났던 거 같은데. 뭐 딱히 나가고 싶거나 애써 약속을 잡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건 뭔가 잘못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 남편에게 물었다. 너 연말인데 뭐 회식같은거 많아? 언제 약속있어? 남편이 정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언제 그런거 있는 거 봣냐. 너나 좀 돌아다녔제. ”
아무래도 끼리끼리 만난다는 게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래 너랑 사니까 내가 좀 돌아다닌다는 소리도 듣고 하지.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살고, 서로서로 어울려 사는 것이 우리종의 강점이라고도 한다. 문제는 그 사회의 범위다. 당신의 사회적 범위와 나의 사회적 범위가 같은가. 내가 정의하는무리와 당신이 정의하는 무리가 같을 것인가. 혼자서 방에 처박히면 사회적 고립이고, 둘이나 셋 가족단위로 대문 안에 처박히면 고립이 아닌가.
날이 갈수록, 나이가 먹을 수록, 생활 반경이 좁아진다. 친분, 교류, 사람을 새로 만나고,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모든 일에 에너지가 쓰인다. 관계는 느슨해 지고 뜸해지다 멀어지거나 잊혀진다. 방구석에 드러누워 핸드폰으로 자꾸 보는 것들에서 친숙함을 느끼고, 쇼핑몰에서 예쁜 무스탕을 결제하면서 세상과의 느슨하게 연결된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 것을 연결이라 할 수 있나.? 대체 할 수 없는 것들을 대체라고 느끼고, 연결이라 부르기 민망한 것들에 개인적 연대감을느끼면서, 같은 기업의 제품을 사는 소비자로서만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인걸까? 내 나이를 헤아려보고, 앞으로 남았을 것 같은 (모를일이지만) 시간들을 헤아려 보고 몇 년 후의 나를 예측해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어디 다같이 화살촉이라도 들고 뛰어나가 함께 사냥이라도 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화살촉이 뿔이 튼튼한 늙은 사슴이 아니라 서로를 겨루는 세상이라 자꾸만 방구석으로 기어들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일곱살이 우리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억지로라도 기어나가 전구를 사고, 늦은 트리를 방 한 구석에 야무지게 세울 예정이다. 커다란 양말을 벽이 아닌 트리에 걸 생각이다. 그 앞에서우리집 일곱살은 산타 할아버지에게 아주 세속적인 소원을 빌겠지. 기원할 대상이 없는 무신론자의 아들에게 산타는 첫번째 신앙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신화에 참여하고 기원하는 아이로 키울 생각이다. 기적을 바라고 염원하고 한번도 본 적 없는 타인이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작은 발판삼아 타인에 대한 호의를 품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래서 아이의 연말에는 해마다 서로의 호의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