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기간에는 평소엔 몰랐던 사람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는 일이 많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상대방의 사상을 엿보게 되면 뭐랄까. 그러니까 뭐랄까. 몰랐으면 좋았을걸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누구를 지지하고 누구를 싫어하는지는 본인의 자유고 내 알바 아니지만, 본인의 선택을 옹호하는 발언 속에서 본인의 사상을 드러내는 것은 약간 다른 문제다. 평소에는 쉽게 내보이지 않던 여성관, 정치관, 약자에 대한 인식, 그럴 수도 있는 일과 그래선 안 되는 일을 가르는 잣대 같은 것들. 무수한 편견과 잘못된 혐오들이 걸러지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것을 들으면 내가 철학자가 아니어도 아 인간이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를 읊조리게 된다. 신념은 부끄러움보다 힘이 세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그런 걸 신념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면 말이다.
지난 3 월 10일은 내 생일이었다. 이번 대통령이 결정된 날이다. 몇 년 전 생일에는 박근혜가 탄핵 판결을 받았었다. 덕분에 내 생일에는 별의 별꼴을 다 본다. 아니 저게 말이야 방귀야 싶은 말들의 대잔치와 아니 뭐 저딴 게 다 있어 싶은 추태들, 혹은 기쁨에 겨워 행복해진 사람들과 너무 기뻤는지 돌아버린 거 같은 사람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고 모두 다르다는 것을 굳이 생일날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박근혜가 탄핵된 날 나는 다른 나라에서 외국 신문 1면에 난 촛불시위와 대통력 탄핵 기사를 보았었다. 어느 섬으로 들어가는 항구에서 영자신문을 사며 좀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같은 날 어떤 인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역시 여자가 대통령을 하면 안 돼. 여자들은 좀 남의 말에 잘 휘둘리고, 봐 이게 뭐야"
"그러게나 말이에요. 남자가 대통령을 해야 시민들한테 총도 좀 쏘고 독재도 좀 하고 그럴 텐데 안 그래요?"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답하는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웠다. 그런 식으로 받아치는 것이 전혀 지성적이지 못한 줄 알지만, 꼭 감정이 앞서면 말이 먼저 튀어나가고야 만다. 이번 생일날도 그런 식의 언쟁들을 아주 많이 목격했다. 이성적이지 못한 말들을 주고받고 성숙하지 못한 감정들이 엉뚱한 곳을 향해 분출되는 이상한 날. 가끔은 사람들의 이런 열정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치적 인간이다. 어쨌든 나에게 주어진 모든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불성실하게 임한 적이 없다. 최대한 인터넷도 멀리했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선거는 나에게 최대 고비였다. 몇 번이나 기권을 고민하고, 선거장에 가서까지 망설였다. 도대체 누굴 뽑으라는 거야 이명박과 박근혜 중 누가 더 좋은지 고르라는 건가? 그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했든 이겼던 졌든 크게 의미도 없다. 이겨도 크게 기쁘지 않고 져도 크게 속상할 일 없다. 그래서 더 이해하지 못하겠다. 누가 되었건 어떻게 그렇게 지지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맹목적으로 옹호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 모든 언행들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믿을 수 있는지.
당신이 왜 환호하고 왜 상심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