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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Nov 08. 2022

마음에 값을 매길 수 있나.

쌉가능이라 이거에요 

형체가 없는 것에도 크기가 있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무게와 깊이가 있다. 

같은 이름을 가졌다해서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다.  한 시간짜리 뉴스에는 극악무도한 인간과 의롭고 선한 인간의 사연을 동시에 다룬다.  같은 뉴스에 나왔다고 하여 우리는 그 인간들을 같은 인간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영혼에는 부피가 있고 어떤 마음에는 가격표를 달 수도 있다. 왜 아니겠나. 목숨에도 값이 매겨지는 세상에서 마음쯤이야.  


택배를 부치러 와서  규격에서 6센티를 초과했을 뿐인데 평소보다 이천 원이 비싸다며 사십 분 동안 소리를 지르는 인간을 봤다. 아침 내내 얼굴이 벌게지도록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뭘 어쩌라는 건가. 가격을 직원이 정한 것도 아니고 임의적으로 직원 맘대로 가격을 책정한 것도 아니고  비싸면 안 부치면 그만이다. 다른 싼 곳을 찾던지 본인이 직접 배달하면 될 일을 저렇게까지 흥분해서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사람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갑자기 안에서 실장이 나와서 들어가서 얘기하시자며 안으로 모시고 들어가더니 그 사람의 양손에 각티슈와 세제를 들려 보내는 거다.  그 사람은 택배 가격이 4000원이 아닌 6000원이라고 직원을 사십 분간 정신적으로 괴롭힌 대가로  선물을 11,000 어치 받아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승리의 눈빛으로 처음에 접수했던 직원을 쏘아보면서 말이다.   

처음에 자초지종을 들은 실장님은 그냥 4000원에 해줘 버리라고 하더니,  직원이 거부하자 선물을 11000 어치 들려 보낸 거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이천 원짜리 마음을 가진 인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문제는 그 이천 원짜리 인간을 상대하여 승리를 안겨준 인간의 마음은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매번 통감하는 건데 그건 그저  똥보다 못한 인간이 똥이 정말로 무서워서 피할 때 쓰는 상징적인 문장이라는 것이다.  진짜 갑질은 초면의 고객보다 직장상사가 하는 경우가 많고 직접적인 갑질보다 간접적인 갑질이 많다.   직원에게 갑질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순간을 모면하고 싶은 사소한 비겁함으로 발생하는 갑질은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니 더욱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직원은 정당하게 자기 일을 했다.  규정에 따라 공평하게 업무를 처리했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고함을 지른 거라면 직원을 행동을 옹호하고 잘못된 갑질에서 직원을 보호해야 하는 게 책임자의 역할이다. 단지 시끄러우니까, 언른 상황을 끝내고 싶어서 값을 깎아주거나 선물을 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직원의 잘못이라고 인정하여 정당하게 일을 처리한 직원의 사기를 꺾고 정당한 가격을 지불한 고객들을 기만하는 행위이고,  이천 원짜리에게는 잘못된 승리의 기억을 심어주게 된다. 이천 원짜리는 앞으로 어디서든 이 승리의 기억을 바탕으로 약자에게 고함을 치고 억지를 부릴 것이다. 오늘은 이천 원이었지만 내일은 천원이 될 것이고 나중에는 오백 원이 되고 십원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이였겠지만 오늘은 개새끼가 되고 미래에는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것은 종적인 퇴보를 부추기고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는 반 인륜적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이천 원짜리 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이천 원을 상대하며 지켜내야 하는 우리의 품위다.  똑같이 이천 원이 될 것인가,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개똥 같은 인간이 될 것인가, 이천 원보다는 나은 인간이 될 것인가는 오롯이 선택의 문제다. 곤장을 쳐서 집구석에 돌려보낼 수 없는 문명의 시대에 문명인이라면 이천 원을 어떻게 상대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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