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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염 Nov 26. 2022

뭘 지켜야 하는 당직이지?

제 몸뚱이나 잘 지키면 된다 이겁니다.

주말 당직 중이다. 도대체 우체국에서, 어떤 비상사태를 대비해 텅 빈 청사를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키고 있다. 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사건이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이다. 텅 빈 청사에서 일어날 일보다,  텅 빈 청사에 직원을 한 명 둠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일들을 더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당직은 늘 갈등의 근원지다. 당직을 하지 않는 책임자들과 당직을 해야 하는 직원들 사이의 갈등, 각 부서 사이의 형평성 논란으로 빚어지는 갈등 , 그리고 남녀 갈등.       

읍 단위의 지방에서 근무했을 때는 평일 밤 당직은 남성들이, 주말 당직은 여성들이, 돌아가면서 했었다.  밤 당직이라 봐야 저녁 아홉 시까지였기 때문에 남성 근무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홉 시를 생각해보자. 돌아다니기 어려운 밤도 아니고 비교적 안전한 조명 아래에서 누구나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시간. 아저씨들이 말했다. 아가씨라면 모를까 멧돼지도 때려잡을 거 같은 아줌마들이 저녁 아홉 시까지 있는 게 뭐가 무섭냐고.                 

당연히 안 무섭다. 나는 당시엔  '아가씨라면 모를까'의 그 '아가씨'였지만, 그때도 멧돼지라면 때려잡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아홉 시는 무섭지 않다. 아홉 시는 죄가 없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니까.


  저녁의 당직실에는 사람들이 온다. 불특정 다수가 동시에 드나드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청사의 대문을 지나 볼일을 가진 단 한 명의 사람이 온다. 나와 상대 둘뿐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남성인 경우도 있고 여성인 경우도 있고, 한국인인 경우도 외국인인 경우도 있다. 캄캄한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다. 사람들은 살짝 열린 쪽문을 걸어 들어와 컴컴한 주차장을 통과해서 나에게 온다.  불 켜놓은 당직실 안은 밝고 밖은 어둡다. 상대는 내가 잘 보이고 나는 상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놀랍도록 약하게 느껴지는 덜컹거리는 유리문을 두드릴 때, 비로소 앞에 누군가 와있다는 것을 안다. 보통은 자신의 등기를 찾으러 온 사람들인데, 업무 시간이 끝난 당직자는 그저 청사를 지킬 뿐, 상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어둡고 지친 저녁, 문을 두드렸는데 허탕을 친 사람들은 기쁘게 돌아가지 않는다. 둘 중 하나다. 그냥 돌아가거나 그냥은 돌아가지 않거나.

흔히들 공평을 이야기한다. 불안과 공포는 나약함과 전혀 다른 언어지만, 사람들이 평등을 입에 올릴 때, 그 단어들은 쉽게 혼연일체가 된다.


  남자들은 본인의 존재감을 잘 깨닫지 못한다. 그저 기분이 나빠서 언성만 높여도 상대방의 심장박동이 얼마나 높아질 수 있는지. 그 소리가 배경과 합쳐질 때, 캄캄한 밤, 아무도 없는 얇은 유리문 앞에서 마주한 상대가 얼마나 실질적인 신체적 위협을 느끼는지. 그건 그들이 공감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공감은 경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경험치가 다른 이들은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밤길을 걸을 때 무서워해야 할 것이 귀신밖에 없었던 아이들과 밤길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의 발소리였던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겠나.

그때 그들이 주장했어야 하는 것은, '아홉 시'나 '아줌마' 또는 '멧돼지'가 아니다.  '유리문'과 '보안시스템' ' 2인 일조' 정도의  심리적 안정감이었다면 모를까. 그때 그들이 그토록 비난했던  아줌마들이 원했던 건 그저 안전이었다.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유리문만 좀 더 튼튼한 문으로 바꾸고 그저 작은 창문 정도로 상대방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아마 얘기는 쉬워졌을 것이다.  


물론 나는 지금  평일 당직도 주말 당직도  모두 한다.  도시의 밤은 시골보다 훨씬 밝고 평등은 때론 치사하고  편향적이지만 구색이란 중요한 거니까.  사 년 전 술 취한 아저씨 한 명이 등기를 안 주면 찌르겠다고 카고 바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듣고 나서는 바깥 유리문을 잠그고 당직실의 덜컹이는 유리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아무리 추워도 작은 쪽창을 열어두고 오들오들 떨면서 그 유리문으로만 대화를 나눈다.

생색내며  한 시간 줄여주고 나서는 염병할 당직비도 안 주는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내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공노비답게 "네네 고객님. 주말에 쳐 전화하지 마시라고요"라고 하지 않고 "네네 고객님 평일에 다시 전화하세요"라고 한다.

 열심히 일하고 내 몫은 다 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문제점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하지만 몫을 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나는 직급이 높아서, 나는 나이가 많아서 혹은 나는 남자라서, 나를 상대로 우월감을 느끼거나 입단속을 잘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상한 일이다 평등은 원래가 치사하고 편향적인 거지만 구색이란 중요한 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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